상법을 전공하는 교수 10명 중 6명이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를 위한 상법 개정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상법을 고치겠다는 방침이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에 필요하다며 거들고 있다. 경제계는 법이 개정될 경우 이사에 대한 소송이 남발돼 경영에 큰 제약이 올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외부 여론조사 업체에 의뢰해 전국 법학전문대학원 및 대학 법학과 소속 상법 전공 교수 13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99명 중 62.6%는 ‘이사 충실의무’를 강화하는 상법 개정에 반대했다. 반대한 이유로는 ‘이미 소수주주 보호 조항이 있어서’가 40%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회사법의 근간 훼손’, ‘부작용 방지 조항 미비’ 등이었다.
민주당은 현재 ‘회사’로 돼 있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 ‘총주주’ ‘주주의 비례적 이익’ 같은 표현을 추가하거나, ‘주주를 공정하게 대할 의무’를 이사들에게 부과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한다. 이에 대해 상법 전문가들 다수는 충실의무 대상인 ‘회사’에 이미 주주의 의미가 포함돼 있어 동어 반복이 될 뿐 법의 효력과 의미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본다. 그런데도 야당이 법 개정을 밀어붙이는 건 ‘주식 투자자들을 위해 우리가 법을 고쳤다’는 걸 과시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문제는 법의 실질적 내용이 달라지는 게 없더라도 이사회의 결정에 불만이 있는 소액주주, 투기자본의 소송은 폭증할 것이란 점이다. 실적, 주가에 단기적으로 부담이 되지만 미래에 대비해 필요한 신사업 진출, 투자를 결정해야 할 때 이사들은 소송 가능성을 의식하게 될 것이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확대가 기업 경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 상법 전공 교수가 65.7%로 훨씬 많은 이유다.
한국 경제는 최근 앞서가던 산업들이 중국에 속속 따라잡히면서 이를 대신할 신성장산업에 대한 기업의 과감하고 도전적인 투자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이런 때 기업들의 의사결정을 힘들게 만들어 경영의 속도를 떨어뜨리는 쪽으로 상법을 고친다면 기업의 가치를 높이기는커녕 미래 가치를 깎아내리는 정반대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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