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와서 앵두꽃은 피고 봄이 와서 머리가 더 허예진 사내가 어린아이처럼 그 꽃을 보는 것은 어딘가 다른 곳, 다른 시간 속에서 누군가와 함께 보는 것은 어쩐지 좀 미안하고 기쁜 일
쬐끄만 흰 꽃들은 / 편종 소리를 내며 / 나를 때린다
―제가 떠나가면 당신도, 세상의 누추도 사라질 거예요
―전동균(1962∼ )
길을 지나가는데 배롱나무가 여전히 꽃을 달고 있다. 아들에게 “여기 꽃이 피었다” 말했더니 힐끗 돌아보지도 않는다. 아, 나는 늙었고 너는 젊구나. 예전에 아버지와 길을 걸으면 “여기 꽃이 피었네, 저기도 꽃이 피었네”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게 뭐 어떻다고.’ 이런 생각을 했는데 이젠 내가 꽃을 들여다본다.
사람은 제가 꽃의 나이일 때는 꽃보다 자신을 예뻐하는 듯하다. 거울 속 꽃 같던 내 얼굴이 사라지니까 이제야 꽃 같은 사람, 사람 같은 꽃이 예뻐 보인다. 잃으면서 배운다. 나쁘지 않다.
한 해 한 해 같은 꽃이 돌아오는 것은 어쩐지 고맙다. 나보고 고마워하라고 핀 것도 아니고 나 좋으라고 핀 것이 아니지만 좋다. 한 송이 한 송이 꽃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꽃을 보던 작년의 나와 더 먼 옛날의 내가 함께 있어 반갑다. 시인에게도 꽃은 그런 의미였다. 피어난 꽃은 의미가 되어 나의 마음을 두드리고 때린다. 세상 천지 다 이런 이치 아니겠는가 싶다. 꽃이 피었어도 마음에 심어야만 꽃이다. 그걸 발견하고 해석해야만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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