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프로야구는 김도영(KIA)으로 시작해 김도영으로 끝날 분위기다. 봄(4월)부터 프로야구 최초로 ‘월간 10홈런-10도루’를 기록한 김도영은 여름(8월)에는 역대 최소 경기(111경기)-최연소(20세 10개월 13일) ‘30홈런-30도루’를 달성했다. 가을(9월)에도 김도영은 2014년 서건창의 한 시즌 최다 득점(135득점)을 넘어 최다 득점 기록 경신을 이어갔다. 김도영은 팀이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한 뒤에는 ‘40홈런-40도루’ 도전을 본격화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40홈런-40도루는 2015년 테임즈(당시 NC)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록했다. 달성하면 김도영이 국내 선수 최초다.
김도영은 2022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을 받을 때부터 “언젠가는 30홈런-30도루를 할 선수”라고 불리던 선수다. 그런데 하필 그 ‘언젠가’가 올해가 된 특별한 도화선이 뭘까. 이범호 KIA 감독은 “수비에서나 공격에서나 전혀 터치가 없으면 빨리 성장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면서 “어린 선수들은 조금만 못해도 ‘(나를) 빼면 어떡하지’ 하고 눈치를 본다. 이런 선수들은 그냥 놔둬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야구장에 ‘마음껏 풀어둔’ 김도영은 올해 처음 풀타임을 치르며 30홈런-30도루와 동시에 3루수로 실책도 30개를 했다. ‘30홈런-30도루-30실책’ 기록 역시 프로야구 최초다. 누군가는 이를 ‘불명예 기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감독의 눈에는 30실책이야말로 올 시즌 김도영이 꽃피울 수 있었던 가장 큰 자양분이다.
이 감독은 “난 데뷔하고 20홈런을 치기까지 5년이 걸렸다. 도영이는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안 겪었으면 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본헤드 플레이를 빼고는 실책 때문에 뭐라고 한 적이 없다. 실수했다고 숨기 시작하면 이런 기록은 한 해 뒤에 도전해야 한다. 어차피 실책을 많이 하는 시즌이 한 번은 나와 버려야 한다. 그러면 다음에 실책도 20개, 10개로 준다”고 했다.
해마다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선수”라는 소리를 듣는 선수도,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구단에서 눈독을 들였다는 선수도 나온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기대만큼의 잠재력을 터뜨리지는 못한다. 아무리 훌륭한 원석이라도 알맞은 ‘가공’ 없이 보석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같은 다이아몬드라도 어떻게 커팅이 되느냐에 따라 값어치는 천지 차이다.
좋은 원석일수록 전문가 눈에는 보석이 아른거린다. 지도자가 ‘이것만 손보면 좋겠다’며 선수에게 손을 대려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날고 기는 타자도 타석에서 10번 중 7번을 실패하는 게 야구다. 단판 승부가 아닌 1년 144경기를 치르며 당장의 성공보다 중요한 건 실패를 견디는 방법을 알아내고 그 속에서 기회를 찾아내는 것이다. 김도영이 자신에게 쏟아진 기대를 현실로 만든 수 있었던 건 자신의 능력을 믿고 기다려준 ‘노터치’의 시간들이다. 인간은 돌덩이가 아니다. 바깥에서 잘라내는 게 아니라 스스로 깨치며 다듬어질 때 가장 밝게 빛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