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에 반발해 사직한 레지던트 9016명 중 3분의 1가량이 재취업했지만 상급종합병원으로는 단 52명만 돌아오는 데 그쳤다. 상급종합병원 1곳당 1.1명꼴이다. 보건복지부의 ‘사직 레지던트 근무 현황’에 따르면 이달까지 의료기관에 재취업한 레지던트 3114명 중 절반이 넘는 1719명이 동네 의원에 취업했다. 필수의료 중증 환자를 담당하던 상급종합병원 레지던트들이 경증 환자를 다루는 동네 의원으로 대거 이동한 것이다.
동네 의원에서도 수술 부담은 작고 수익은 나은 인기 진료과목으로의 쏠림 현상이 뚜렷했다.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가 개원한 의원에 취업한 레지던트가 34%(587명)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는 내과 정형외과 안과 피부과 성형외과 전문의가 개원한 의원에 주로 취업했다. 일반의가 피부과를 개원하는 비율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피(피부과)·안(안과)·성(성형외과)·정(정형외과)’ 의사만 급증한 셈이다. 2월 레지던트 사직률이 산부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 의료과목에서 높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최근 대통령실은 “현재 출근 중인 레지던트는 1000여 명이고, 전공의를 사직하고 신규 취업한 전공의를 포함하면 전체 레지던트의 40%가 의료 현장에 이미 돌아와 있는 것”이라며 마치 의료 현장이 정상화되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응급실·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 의원으로 엑소더스가 벌어진 현실을 심각하게 왜곡한 발언이다. 필수의료 공백을 해소하겠다던 의대 증원이 오히려 악화시키는 어이없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문제는 의정 갈등이 조속히 수습되지 않으면 가뜩이나 부족한 필수의료 의사의 맥이 끊기게 되고, 그에 따른 필수의료 공백이 점점 심각해진다는 점이다. 정부는 3년간 10조 원을 투입해 상급종합병원을 전문의 중심 중증질환 치료 병원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의사 배출이 뒷받침돼야지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당정은 의정 갈등을 해결할 의지조차 없어 보이고, 의료계는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거칠고 서툰 정책 추진의 대가를 애꿎은 국민이 치르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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