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해외 과학기술 인재 유치 프로그램인 ‘첸런(千人)계획’에 최소 13명의 한국 전문가가 동참해 중국으로 건너갔던 것으로 처음 확인됐다. 이들은 모두 신소재, 생명공학, 인공지능(AI) 등 국가 전략기술에서 뛰어난 연구성과를 보여 준 핵심 인재였다. 대통령상을 수상한 학자도, 전공 분야에서 ‘세계 상위 2%’ 명단에 오른 과학자도 있었다. 첸런계획은 공식 종료됐지만 중국의 한국 인재 빼가기는 이름을 바꿔가며 은밀하고 집요하게 이어지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첸런계획에 참가한 한국 학자들을 추적해 보니 중국은 필요한 기술이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재들에게 접근했다. 주로 학자들이 해외에서 알고 지낸 중국인 교수나 한국에서 가르친 중국인 제자들을 통해 포섭했다. 학자들이 흔들린 건 노후를 보장하는 돈보다는 제대로 된 연구환경이었다. 은퇴 후에도 계속 연구하고 싶은 노학자, 연구비 걱정 없이 마음껏 연구하고 싶은 과학자들을 집중 공략했다.
첸런계획은 인재 및 기술 유출을 우려한 해외 각국의 반발로 종료됐지만 ‘치밍(啓明·계몽이라는 뜻)계획’ 등으로 이름을 바꿔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다. 전문가 구인구직 플랫폼 등을 통해 대상을 물색하는데, 차세대 반도체 등 핵심 기술을 연구 중이라고 밝힌 전문가들이 주요 접촉 대상이 된다. 보조금과 월급, 연구비 등을 합쳐 1인당 연 24억 원 수준의 지원을 제시한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인재뿐만 아니라 핵심 기술도 유출됐다. 첸런계획에 선발된 한 약학 분야 석학은 지원 조건으로 연구 관련 특허를 중국에 넘겨야 한다는 요구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올해 5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의 확정판결을 받은 KAIST 교수는 2년여 동안 첸런계획에 참여하면서 자율주행차의 눈으로 불리는 라이다 등 핵심 기술 72건을 중국에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이 국가 차원에서 연구개발과 인재 확보에 집중하면서 2022년 기준으로 국가 핵심 과학기술 11대 분야에서 한국의 수준은 중국에 처음으로 역전당했다. 하지만 한국은 기술패권 경쟁의 핵심인 인재를 키우는 데도, 지키는 데도 실패하고 있다. 이공계로 데려와야 할 두뇌는 의대에 빼앗기고, 기껏 양성한 인재들은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대학은 제대로 된 연구장비를 확보하기는커녕 가르칠 교수조차 구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국내 인재도 지키지 못하는 마당에 최상위급 해외 인재 1000명을 유치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이 얼마나 현실성을 가질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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