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입학 정원이 10% 이상 늘어난 전국 30개 의대의 평가 인증 절차가 진행 중인 가운데 교육부가 의대생 집단 수업 거부를 대규모 재난으로 규정하고 이로 인한 학사 운영 파행으로 불인증을 받더라도 그 처분을 1년 이상 유예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대학의 노력과는 무관한 사태로 불인증을 받을 경우 학교와 학생들의 막대한 불이익이 우려된다며 이 같은 내용의 평가 인증 규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교육부가 이번 특례 조항을 신설한 것은 증원된 대학들 중 상당수가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의 평가 인증에서 탈락할 것이라는 전망과 무관하지 않다. 인증을 못 받으면 신입생 모집이 금지되고 의사 면허 시험을 볼 수 없다. 하지만 불인증 처분 유예는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단기간에 73% 증원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어 보완 기회를 주더라도 교수 충원과 시설 확충에는 한계가 있다. 유예 기간을 현행 1년에서 ‘1년 이상’으로 연장한 것도 문제다. 내년부터는 증원된 신입생과 유급생들까지 7500명이 6년간 함께 수업을 받아야 하는데 이런 사태에 대비해 유예 기간을 무기한으로 늘려 놓은 것 아닌가.
이번 개정안에는 교육부가 인증기관의 지정을 취소해 평가 인증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 기존에 받았던 인증 유효기간을 인정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2004년 설립된 의평원은 국내 유일의 의대 평가 기관으로 정부는 올 5월 의평원을 향후 5년간 의대 교육을 평가 인증할 기관으로 재지정했다. 의대 교수들은 이번 입법예고에 ‘제대로 일하면 인증기관 지정을 취소한다는 협박이자 인증 제도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라고 반발하고 있다.
급격한 증원으로 의대 교육이 부실해지지 않도록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것은 국민 건강권을 책임진 정부의 의무다. 그런데 거꾸로 대학에는 ‘F학점도 진급시키라’고 하고, 인증기관엔 평가 기준을 완화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의사의 질이 떨어지건 말건 2000명 증원 숫자만 맞추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자동차 안전 기준을 낮추는 것과 뭐가 다른가. 대통령실은 29일 ‘의료인력 수급 추계기구’를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추계기구부터 만들고 의대 증원을 했더라면 의정 갈등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워 놓고도 인정하지 않으니 후속 대책을 내놓을수록 사태가 꼬이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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