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낸 파면 결의안은 신박하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안 했다는 이유로 고위공직자에 대해 국회에서 “즉각 파면하라”는 결의안이 나온 것은 본 적이 없다. 김 차장을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면서 대통령실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같은 시각적 묘사를 해놓은 부분도 낯설다.
야당 “경례 안했다” 김태효 파면 결의안
문제가 된 윤석열 대통령의 체코 방문 환영식 동영상을 보면 옆에 도열해 있던 김 차장이 두리번거리다 멈칫한 채 서 있는 모습이 어색하긴 해도 고의적인 경례 거부로 단정하긴 어렵다. 이를 “의도적”이라고 문제 삼으면서 과거 논란이 됐던 그의 일본 관련 발언을 덧붙여 ‘친일 매국’을 제목에 달아 놓은 결의안은 어설프다. 애국가가 나오는 동안 가슴에 손을 얹지 않은 뻣뻣함은 어차피 구실이었을 뿐, 50명이 넘는 민주당 의원들이 겨냥한 타깃은 김 차장이 주도해 온 것으로 알려진 윤석열 정부의 대일 정책일 것이다.
윤 정부의 대일 전략은 미국 인도태평양 정책과의 연계, 그리고 그 핵심축이 되는 한미일 협력 강화라는 큰 틀에서 이뤄지고 있다. 미국과 패권 다툼을 벌여 온 중국의 공세적 외교,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장기화 속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에 대응하기 위해선 한미일이 더 끈끈하게 뭉쳐야 한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한일 관계를 풀어야만 가능한 3각 협력이다.
조급함이 앞서는 듯한 정책들을 놓고 추진 방식이 거칠고 정교함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계속돼 온 게 사실이다. 강제징용 문제만 해도 제3자 변제 방식을 추진하던 지난해 대통령실의 입장은 “일본에 조건 없이 제안하고 추진하라”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상을 뛰어넘는 전향적 입장 선회에 일본 측이 되레 당황해서 “정말 원하는 게 없느냐”고 수차례 확인했다고 한다. 당시 협상을 지켜본 외교관들 사이에서는 “일본이 생각하고 있던 것과 다르게 처리한 셈이니 진정한 ‘반일(反日)’ 아니냐”는 자조적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민주당은 이런 윤 정부의 대일 외교를 공격하고 싶겠지만, 정작 공격 대상으로 삼아야 할 국가안보실장은 수시로 교체되고 있다. 결국 실세 2인자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 차장이 대놓고 타깃이 돼 있는 상황이다.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 “해리스 후보의 참모들을 가르쳐야 한다” 같은 부적절한 발언들이 누적된 탓도 있으니 김 차장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까칠한 언행과 직설화법 등으로 가뜩이나 오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다. 그렇다고 해도 민주당이 제출한 이번 파면 결의안은 내용과 방식 모두 핵심에서 한참 벗어났다.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재선될 경우 1기 행정부 때의 미일 간 밀착 구도가 재현되면서 한국만 어정쩡하게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원칙’이 공고히 유지될지 여부도 알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에서는 아시아판 나토(NATO) 창설을 주장하는 안보통이 새 총리로 선출됐다. ‘친일 프레임’ 속 정부 비판을 넘어 일본과의 미래 협력을 어떻게 끌어갈지, 요동치는 동북아 정세에 어떤 다자 구도로 대응할지에 대한 현실적 방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왜놈” 막말 공격 넘어 외교정책 지적을
이런 정책적 고민은 뒷전으로 미뤄 둔 채 특정 공직자에게 “왜놈의 후예 아니면 매국노 밀정”이라는 딱지를 붙여 공격한다고 정부의 대일 정책이 개선될 리 없다. 이런 수준으로는 한미일 협력 강화 과정에서 발생한 대중 정책의 구멍이나 편중 외교의 문제점을 짚은 데까지 나아가는 것은 기대 난망이다. 이제 곧 국정감사가 시작된다. 최소한 ‘김태효 파면 결의안’보다는 깊이 들어간 질의가 이뤄져야 지켜보는 이들이 덜 민망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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