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메신저’ 텔레그램이 꼬리를 내렸다. 딥페이크 유통, 마약 밀매, 테러 등 범죄에 악용되고 있으니 협조해 달라는 각국 정부의 요구에도 끄떡 안 하던 텔레그램이 응답하기 시작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등 규제 당국이 성착취물 등 불법 게시물을 지워달라고 하면 바로 삭제하고, 수사기관의 범죄자 개인정보 제공 요청에도 응할 방침이라고 한다. 우범자들이 몰려드는 후미진 뒷골목 같은 온라인 공간에 환한 가로등을 세우기로 한 셈이다.
▷텔레그램으로선 등 떠밀린 선택이었다.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파벨 두로프가 프랑스에서 체포돼 기소된 상황에서 선처를 구하려면 꼬리를 내려야만 했다. 범죄를 방관하는 플랫폼 사업주는 공범으로 간주해 처벌한다는 프랑스 국내법이 위력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두로프 CEO는 이용자 간 대화가 서버에 남지 않고, 암호화된 개인정보를 푸는 것도 쉽지 않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체포된 지 불과 한 달 만에 정보 제공이 일부 가능하다고 태도를 바꾼 걸 보면 그동안 정부의 협조 요청을 일부러 외면해 온 것 같다.
▷이번 텔레그램 사례는 유해 콘텐츠를 방치하는 해외 플랫폼에 책임을 묻고 시정하도록 하는 게 공허한 목표가 아니란 걸 보여준다. 외국 기업에 무리하게 국내법을 들이대면 통상 마찰이나 사업 철수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지만 설득을 병행하면서 책임을 다하도록 동원 가능한 압박 수단을 마련해놔야 한다.
▷호주의 온라인안전국(eSafety Commissioner)이 좋은 사례다. 이 기관은 디지털 범죄를 총괄 대응하는 호주 정부의 컨트롤타워다. 온라인안전국은 구글,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 플랫폼 기업에 2년간 시간을 줘 유해 콘텐츠 자정 시스템을 만들도록 한 뒤 충분치 않으면 정부 기준에 따르도록 했다. 아동 성학대나 테러 관련 게시물은 최악의 콘텐츠로 분류해 무조건 삭제하게 했다. 정부의 최고 대응 기구가 어느 정도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요구사항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때로는 과감하게 제재를 부과하다 보니 기업들의 이행률도 높다.
▷우리는 빅테크 기업들과 상대할 이렇다 할 컨트롤타워가 없다. 여성가족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여러 부처에 걸쳐 있다. 이들 부처에서 불법 콘텐츠를 발견하면 방심위로 넘기는데 방심위는 구속력이 없는 민간 독립기구다. 플랫폼 기업들에 자율 규제를 요청할 수 있을 뿐이어서 삭제 요구 콘텐츠의 30∼40%는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텔레그램을 변화시킨 건 프랑스 사법 당국이고, 호주에서 빅테크들이 눈치 보는 건 온라인안전국이다. 우리도 이런 사례를 참조해 해외 플랫폼 기업들이 불법 유해 콘텐츠 방치를 돈 벌이 수단으로 삼겠다는 발상 자체를 못 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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