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분방한 새색시[이준식의 한시 한 수]〈284〉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0월 3일 22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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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창(王昌)에게 시집갈 땐 열다섯 나이, 사뿐사뿐 화려한 대청으로 들어섰지.
나이 가장 어리다는 자신감에다, 관직에 몸담은 듬직한 낭군.
춤이라면 싱그러운 ‘전계무(前溪舞)’를 좋아했고, 노래라면 유장한 ‘자야가(子夜歌)’를 아꼈지.
한가해지면 벌이는 풀쌈놀이, 종일토록 화장도 않았었다네.
(十五嫁王昌, 盈盈入畵堂. 自矜年最少, 復倚婿爲郞.
舞愛前溪綠, 歌憐子夜長. 閑來鬪百草. 度日不成粧.)

―‘왕씨네 새색시(왕가소부·王家少婦)’·최호(崔顥·704∼754)


열다섯 새색시의 일상이 실로 자유분방하다. 남편을 믿거라 의지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춤과 노래에 심취한다. ‘전계무 보고 나니 기력이 다 빠지고, 자야가 들으니 마음이 쓰라린다’(이상은(李商隱)·‘이별의 아픔’)처럼 이 특정의 춤과 노래는 당시 속에 자주 등장하는 레퍼토리. 유행에 민감했던 새색시 역시 이를 즐긴 모양이다. 그러고도 무료해지면 풀쌈놀이를 벌이는데 화장조차 잊을 만큼 흥겨웠던 듯. 시인은 새색시의 철딱서니 없는 행태를 개탄한 것일까. 혹 그녀의 유별난 일상을 경이롭게 바라본 것일까. 그도 아니면 당대 양갓집 여인의 흔하디흔한 일상의 한 단면을 스케치한 것일까.

‘투백초(鬪百草)’라고 표기된 풀쌈놀이는 질경이, 클로버 등의 줄기를 서로 엇걸어 당겨 누가 끝까지 끊어지지 않는가를 겨루는 놀이. 정겨운 이름이다. 중국에선 여인들이 누가 더 다양하게 들풀을 채집했나를 겨루는 놀이도 ‘투백초’라고 했다는데 글자로 보면 후자가 더 어울릴 성싶다.

#자유#새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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