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사과값이 급등하더니 가을이 오니 배추값이 난리다. ‘금(金)사과’와 ‘금배추’는 폭염과 폭우 등 이상기후로 작황이 부진한 데 따른 것이다. 고온에 따른 생산량 감소로 원재료 가격이 오르는 ‘히트플레이션’(열+인플레이션)은 우리만의 현상은 아니다.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올해 올리브와 코코아는 생산량이 급감하며 가격이 치솟아 각종 식품에 영향을 줬다.
문제는 앞으로 세계 곳곳에서 더욱 빈번하게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 생산량 감소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등이 발간한 ‘2024 세계 식량위기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2022년 12개국 5700만 명, 지난해 18개국 7700만 명이 극심한 식량 불안에 시달렸다.
장바구니 부담이 커지긴 했지만 온·오프라인 시장에서 먹을 것을 쉽게 구할 수 있는 현시점의 한국에서 식량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와닿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빨리 대책을 세워 실행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한국은 심각한 식량위기 국가가 될 것으로 우려한다.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1970년 86.2%에서 2021년 44.4%로 내려갔다. 이마저도 쌀 덕분이다. 쌀을 제외하면 2021년 기준 식량 자급률은 11.4%에 불과하다. 2022년 한국의 식량안보지수는 전 세계 113개국 중 39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는 최하위였다.
남재철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특임교수는 ‘6번째 대멸종 시그널, 식량 전쟁’이란 책에서 앞으로도 우리가 원할 때 언제든지 외국에서 식량을 저렴하게 수입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기에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2050년까지 식량 생산량이 최대 30% 감소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식량 가격은 50%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미 주요 각국은 식량안보 경쟁에 돌입한 상태다. 중국은 농지의 다른 용도 전환과 음식물 낭비를 방지하는 내용 등을 담은 ‘식량안보보장법’ 시행에 들어갔다. 외신들은 세계 최대 농산물 수입국인 중국이 이 법을 통해 해외 식량 의존도를 낮춰 자급자족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도 얼마 전 25년 만에 식량안보 강화에 초점을 맞춘 방향으로 농업기본법을 개정했다. 일본 언론들은 “국내 생산 확대를 기본으로 수입국 다양화, 식량 비축으로 식량의 안정적 공급을 모색하고자 했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연간 수요량의 약 80%(1800만 t)를 해외에 의존하는 세계 7위 곡물 수입국이다. 국제 식량 가격 상승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식량위기 대한민국’의 저자인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은 “식량위기는 더 이상 아프리카 등이 겪는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고, 한국이 10년 안에 겪게 될 문제일 수 있다”고 했다.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신품종 개발, 도시농업과 수직 농법 확대, 남아도는 쌀을 활용한 가루쌀 개발 등 안정적인 식량 공급을 위한 대안 마련과 실행이 필요한 시점이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모두의 노력도 절실하다. 지구가 계속 달아오른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국내산 사과와 배추를 아예 못 먹을지도 모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