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지역에서 전기가 필요 이상으로 생산돼 발전을 일부러 멈추거나 억제하는 ‘출력 제어’가 급증하고 있다. 날씨, 계절에 따라 생산량이 들쭉날쭉한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증가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송전망을 훨씬 촘촘히 깔아 치밀하게 전력을 제어하고,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확충해야 하지만 막대한 빚에 짓눌린 한국전력의 재정 사정과 님비(지역 이기주의) 현상 때문에 관련 투자는 계속 지연되고 있다.
한국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까지 전국의 내륙 지역에서 발생한 신재생에너지 출력 제어는 31차례로 연간 2차례였던 지난해의 15배였다. 송전선이 육지와 연결되지 않아 남는 전기를 처리할 방법이 제한된 제주 지역의 1∼8월 출력 제어 횟수는 83건으로 내륙 지역보다 훨씬 많다. 신재생에너지 투자가 전력 생산에만 집중되고, 필요한 곳에 전기를 보낼 송전망 투자는 지연돼 발전설비를 억지로 놀리는 황당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발전량이 사용량보다 너무 많으면 과부하가 걸려 전력망이 망가지게 된다. 대규모 정전 사태를 막기 위해 불가피하게 출력을 낮춰야 하는 이유다. 충분한 준비 없이 신재생 발전설비를 늘린 탓에 관련한 손해는 불어나고 있다. 2018년부터 현재까지 출력 제어로 인한 전력 손실액이 198억 원에 이른다. 넘치는 전기를 저장해두는 장치인 ESS의 신규 도입은 막대한 비용, 화재를 우려한 지역주민의 반발 때문에 오히려 위축되고 있다.
현 정부는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치를 지난 정부 때의 30.2%에서 21.6%로 크게 낮췄다. 그럼에도 현재 비중이 9.6%란 걸 고려하면 달성이 쉽지 않다. 길게는 10년 넘게 걸리는 송전망 건설의 속도를 높이지 못하면 2011년 9월 발생했던 ‘블랙아웃’ 사태가 4년 뒤쯤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나오고 있다.
인공지능(AI), 전기차의 확산으로 안정적인 전력 생산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대한 과제가 됐다. 아까운 전력을 날려버리는 일을 줄이려면 송배전망 건설에 정부가 직접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처리가 급하다. 일시적으로 성장의 벽에 부딪힌 이차전지 산업을 지원해 ESS 보급을 확대하는 전략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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