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헤어져 자신을 세우기[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0월 8일 23시 03분


일러스트레이션 갈승은 atg1012@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갈승은 atg1012@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정신분석은 갈등에 사로잡힌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려고 받습니다. 모든 분석이 제대로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분석가의 문제일 수도, 피분석자가 원인일 수도, 두 사람 모두가 자신들도 모르게 그런 방향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분석이 정체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제대로 진행되도록 조치해야 합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일단 분석가는 여러 해 수련을 해서 전문성을 갖춰야 합니다. 수련 요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피분석자가 되어서 받는 ‘교육분석’입니다. 말이 ‘교육’이지 환자처럼 분석을 받는 겁니다. 일반적인 개인 분석과 다른 점은 수련에 충분한 분석을 받았는지를 평가할 힘이 교육분석가에게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분석가 수련생과 교육분석가의 관계는 환자와 분석가 사이의 치료 관계와 바탕이 다릅니다.

일반분석이든 교육분석이든 최종 목표는 분석이 종결된 이후에 분석가에게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피분석자가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분석은 만나기 전부터 ‘제대로 헤어지기’를 전제로 만나는 겁니다. 분석이 끝난 후에도 피분석자가 분석가에게 계속 의존하거나, 분석가가 피분석자를 자유롭게 놓아주지 않고 붙들고 있다면 제대로 이뤄진 분석이 아니고 왜곡된 것입니다.

분석 과정에서 분석가는 피분석자를 이끄는 사람이 아닙니다. 피분석자가 하는 이야기를 꾸준히 인내심을 가지고 들으면서 그 속에 담긴 무의식적 의미를 추출해 해석이라는 방식으로 되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분석이 끝난 후에도 피분석자가 ‘자기분석’이라는 방식으로 스스로 넓고 깊게 성찰하는 능력을 성취하도록 돕습니다. 그러니 따라가면서 적절하게 개입해야지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앞서서 이끌면 분석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크게 어기는 겁니다.

분석 과정에서는 피분석자가 분석가를 믿고 의존하는 부분이 필요합니다. 점차 홀로서기가 가능해지면 분석 종결을 고려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유로운 삶의 추구가 최종 목표인 피분석자에게 주변이나 사회의 기대에 순응하는 법을 억지로 가르치려 한다면 분석이 아닙니다. 아무리 피분석자를 위한 ‘충언(忠言)’이라고 우겨도 다른 사람의 삶을 자신이 판단하는 방식으로 마름질하려는, 분석의 본질과 경계를 벗어난 잘못된 개입입니다. 분석의 목표는 사회가 기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원하는 사람이 되도록 돕는 것입니다. 착하다고 평가받을 사람, 무조건 따르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혼자의 힘으로도 삶을 제대로 살아 나갈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권위를 내세워서 압박하는 분석가는 자격 미달입니다. 전문적인 입장과 역할을 유지하면서도 친구와 비슷하게 어울려야 합니다. 엄격하고 비판적이며 억누르는 아버지보다는 속 깊게 배려하는 어머니에 가까워야 합니다. 권위와 편견에 사로잡힌 분석가는 너그럽지 못하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니 분석 도중에 어려운 고비에 부딪힙니다. 분석가도 피분석자도 마음이 자유로워야 자신을, 관계를,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교육분석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합니다. 수련생인 피분석자가 분석가 자격을 받을 수 있는지에 알게 모르게 관여합니다. 힘의 남용이라는 부작용이 따를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불필요하게 분석 기간을 일부러 오래 끌거나 종결 후에도 피분석자를 자신에게 종속시키려고 한다면 분석의 본질과 자신의 정체성을 버린 것입니다. 현대 정신분석에서는 교육분석가라는 독점적 제도를 폐지하고 원하는 분석가에게 허용해 수련생이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자는 논의가 활발합니다. 분석 결과를 측정할 방법이 없으니 의도를 숨기고 허망(虛妄)한 이유를 그럴듯하게 내세워서 수련생의 미래를 마음대로 휘두를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막자는 겁니다.

자격 취득과 상관이 없는 일반인 피분석자는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분석 과정에서 필요했던 의존 관계가 종결 후에도 지속되면 삶을 자율적, 주도적으로 사는 것이 힘들어지면서 분석가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제대로 분석할 수 있는 분석가를 만나도록 애써야 합니다. 이미 합의된 종결 시점이 가까워져도 정리에 집중하지 않고 놓아주지 않으려는 의도를 대놓고, 아니면 은근히 드러내는 분석가는 일단 경계하고 적절하게 대처해서 관계를 제대로 정리해야 합니다. 어느 관계에서나 자유로운 삶을 얻으려면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분석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자신#마음#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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