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이 지난달 28일로 시행 8년을 맞았다. 청탁금지법은 2014∼2015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적용 범위 등을 두고 상당한 논란이 벌어졌다. 시행 두 달 전 헌법재판소가 합헌으로 결정했지만 일부 조항이 위헌이란 주장도 여전히 제기된다. 공직자가 아닌 언론사와 사립학교 임직원까지 적용하고, 배우자 금품 수수를 공직자가 신고하지 않을 때 처벌토록 한 조항 등은 헌법상 과잉 금지 원칙을 위반했다는 주장이다.
“배우자 처벌 못 해”… 빈틈 보인 청탁금지법
하지만 공직자들의 ‘부패 민감도’가 전반적으로 높아진 것은 청탁금지법의 성과로 꼽힌다. 모든 공직자를 깨끗하게 만들 수는 없어도, 최소한의 부패 방지책으로는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스폰서 검사’ 등의 사건에서 직무 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금품을 수수한 공직자가 무죄를 받는 것을 지켜본 국민들도 청탁금지법이 ‘형법의 빈틈’을 메워 주리라 기대한다.
청탁금지법의 효과는 국민권익위원회가 매년 국민과 공무원, 법조인 등 4000여 명을 상대로 벌이는 ‘부패 인식도’ 조사에서도 일부 확인된다. 지난해 조사에선 ‘공직사회가 부패하다’는 인식이 0.3%포인트(일반인)에서 2.1%포인트(전문가)까지 전년보다 감소했다. 한 장관급 공직자는 “마음의 자유를 얻었다”고 했다. “선물이 올 때마다 난감했는데 ‘고민의 고통’에서 해방돼 거절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최근 청탁금지법의 빈틈이 노출되면서 법조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수수 사건이 검찰 고발 10개월 만에 무혐의·불기소로 처분되는 것을 지켜보면서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 직무와 관련해 배우자가 금품을 수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배우자 처벌 조항은 ‘과잉 규제’ 우려가 나오면서 법을 처음 만들 때부터 두지 않았다. 특히 검찰은 디올백이 공직자(대통령) 직무와도 무관하다고 판단하면서 김 여사의 알선수재 혐의 등도 모두 무혐의로 판단했다. 최재영 씨가 김 여사의 호의를 얻으려고 건넨 단순한 선물이란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부인이 300만 원 상당의 가방을 선물로 받아도 된다면, 우리 사회의 부패 수준이 권익위 조사처럼 개선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청탁금지법의 허점은 또 있다. 이 법은 공직자가 1회 100만 원이 넘는 금품을 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공직자가 접대 자리에 동료들과 함께 나갔다면 1인당 수수 금액이 얼만지가 중요한 이유다. 각자 머문 시간과 인원까지 고려해 계산기를 두드려야 하는 것이다. 9일 대법원은 라임자산운용의 룸살롱 접대를 받은 혐의를 받는 나모 검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했다. 룸살롱에 머문 시간과 인원 등을 토대로 나 검사가 93만9000원의 향응을 받은 것으로 본 1, 2심을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은 접대 상황을 더 세분화하면 나 검사의 수수액이 100만 원을 넘길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검찰은 나 검사와 같이 룸살롱에 있었던 다른 검사 2명은 1인당 수수 금액이 100만 원 미만이란 이유로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국회·정부가 ‘청탁금지법 개정’ 응답해야
10년 전 청탁금지법의 원안을 만든 김영란 전 대법관은 “우리 사회 공공심(公共心·공공의 행복과 이익을 위하는 마음)과 신뢰 회복 방안에 대한 근본적 고민의 결과물”이라고 강조해 왔다. “공공심에 대한 신뢰는 생래적으로는 가질 수가 없고 사회 전반을 업그레이드시켜야 가능하다”고도 했다. 두 사건에 대한 검찰과 법원의 판단을 지켜보면서, 청탁금지법이 우리 사회 공공심을 증진시키고 있는지, 정부와 국회는 사회 전반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청탁금지법 개정에 나설 생각은 없는지 묻고 싶어졌다. 마침 정기국회가 열리고 있는 만큼 국회와 정부가 응답하길 바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