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다 달인 약을 하이얀 약사발에 밭어놓은 것은 아득하니 깜하야 만년 녯적이 들은 듯한데 나는 두 손으로 고이 약그릇을 들고 이 약을 내인 녯사람들을 생각하노라면 내 마음은 끝없이 고요하고 또 맑어진다
―백석(1912∼1996)
나는 시를 공부하고 아버지는 시를 쓰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어떤 시가 좋은가 토론하곤 한다. 그중에서도 백석은 잃어버린 보물, 어마어마하게 아름다운 시인의 이름이다. 아버지는 ‘흰 바람벽이 있어’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좋다고 한다. 나는 ‘북방에서’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좋다고 한다. 시에 등장하는 ‘갈매나무’라든가 ‘응앙응앙’ 운다는 당나귀를 떠올리면 마음이 폭신폭신해진다. 우리에게 이런 시인이 있음이 자랑스럽다.
좋은데 백석 시는 어렵기도 하다. 그가 시를 쓴 것이 벌써 100여 년 전이고, 그는 고어와 평안도 방언을 많이 사용했다. 고풍스러운 분위기, 신비로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은 언어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백석 시를 읽다가 ‘뭐지?’ 하고 멈칫할 때가 많다. 그만큼 우리가 언젠가의 말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백석의 짧고도 재미난 시를 하나 소개한다. 한글날을 기념하여 문해력 시험인 듯 읽어보자. 토방은 무엇일까. 숙변은 우리가 아는 그 변일까. 밭어놓는다는 것은 무엇이고 깜하다는 말은 또 뭘까. 요즘 트렌드는 빈티지와 레트로라는데 시 따라 “녯적”을 떠올리는 것은 “삐삐 즐거웁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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