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장원재]연금개혁, 국회와 정부를 믿어선 안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0월 11일 2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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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정책사회부장
장원재 정책사회부장
정부는 지난달 4일 국민연금 개혁안 발표 후 “2003년 이후 21년 만에 발표한 정부 연금개혁안”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연내 국회를 통과하면 17년 만에 개혁이 이뤄진다”고 했다. 정부가 연금개혁안을 제출한 건 2003년인데 왜 개혁은 2007년에야 됐을까.

4년 우여곡절 끝에 이뤄진 연금개혁

국내외에서 연금개혁이 진통 없이 진행된 경우는 없다. 2000년대 중반 연금개혁 때도 마찬가지였다.

2003년 취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선거 전 연금개혁에 소극적이었지만 취임 후 입장을 바꿨다. 이후 학계, 경영계, 노동계 등이 모여 논의를 거듭했지만 결론을 못 냈고 결국 세가지 안을 발표한 뒤 정부로 공을 넘겼다. 정부는 그중 하나를 택해 2003년 10월 법안을 발의했지만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소극적이었고 결국 이듬해 16대 국회가 막을 내렸다.

17대 국회에선 후속 논의가 3년 동안 이어졌고 2007년 4월 본회의 표결까지 갔지만 ‘국민연금법-기초노령연금법’ 세트 중 표에 도움이 되는 기초노령연금법만 통과되고 정작 국민연금법은 부결됐다.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맛이 쓰기에 사탕과 같이 올렸는데 약사발은 엎고 사탕만 먹었다”고 국회를 비판하며 사퇴했다. 언론에서도 ‘무책임한 행태’란 비판이 이어지자 여야는 부랴부랴 그해 7월 국민연금법을 통과시켰다.

20여 년 전 연금개혁 과정을 설명한 건 현재 상황에 주는 시사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첫째, 연금개혁은 인기를 얻기 어려운 지난한 작업이다. 2002년 대선 때 연금개혁을 주장했던 이회창 후보가 패배하고 정작 연금개혁에 소극적이었던 노 전 대통령이 당선 후 추진하겠다고 나선 것도, 2004년 총선 직전 표결이 무산된 것도 연금개혁이 표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둘째, 전문가와 각계 대표가 머리를 맞대고 개혁안에 합의할 것이란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 당시에도 이번에도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는 어떤 안에도 합의하지 못했다. 합의가 가까워질 때마다 더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등 딴지를 거는 인물이 나타나곤 했다. 김상균 전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공론화위원장은 “가장 기본적이고 시급한 것부터 하나씩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의 교훈”이라고 했다.

셋째, 국회와 정부를 믿으면 안 된다. 17년 전 국회는 4년간 논의 후에도 결국 표에 도움이 되는 법안만 통과시켰다가 비판을 받고서야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노무현 정부도 출범 직후부터 추진했던 연금개혁을 지지율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임기 말에 마무리했다.

국회, 정부가 못 미더운 건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21대 국회 연금특위는 2년 동안 논의했지만 결론을 못 냈고 임기 말 유럽 출장 계획을 발표했다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현 정부는 ‘연금개혁’을 주요 국정과제로 내세우고도 지난해 24개 시나리오를 국회에 제출해 ‘맹탕 개혁안’이라는 비판을 받고서야 1년 만에 단일안을 제시했다.

“가장 좋은 연금개혁은 빠른 연금개혁”

유불리에 따라 입장을 뒤집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기일 복지부 1차관은 지난달 6일 브리핑에서 “어느 백신이든 빨리 맞는 게 좋은 것처럼 연금개혁은 빠를수록 좋다”고 했다. 불과 4개월 전 “(21대 국회에서) 급하게 하기보다 22대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를 거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던 조규홍 복지부 장관의 말과는 전혀 달라진 태도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20여 년 전 언론의 감시와 국민의 관심이 연금개혁을 완수하는 최종 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부탁하고 싶다. 앞으로 눈을 크게 뜨고 조변석개하는 정부와 표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국회를 언론과 함께 감시하자고 말이다.

#국민연금#연금개혁안#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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