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원호]우리는 소설을 읽을 준비가 되었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0월 14일 2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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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읽기는 둔감의 굳은살 깎여 나가는 아픔
노벨상으로 우리의 집단적 기억이 보편성 획득
‘추앙’보다 공동체 ‘메타 스토리’ 생성 넘치길

박원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박원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한강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몸이 아프다. ‘채식주의자’를 수년 전 처음 읽었을 때도 그랬고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난 지금 다시 읽어 보아도 그러하다. 일상이라는 견고한 성채를 쌓고 살아가면서 나날이 늘어가는 뱃살과 함께 너절한 세상을 비웃는 신공으로 무장한 심지어 나 같은 중년 남자에게도 그러하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몸이 아프다는 것은 이를테면 그런 것이다. 어른이 되면서,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가면서, 타인들에게 시달리면서, 스스로 무기력함에 익숙해지면서, 지하철에서 각자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온몸에 각질처럼 굳은살을 붙여오지 않았겠는가.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남몰래 고통과 슬픔을 겪으면서 삶을 견디고 있음을 정면으로 직시케 하는 것이 한강의 소설이라면, 그 둔감의 각질이 사포에 깎여 나가는 듯한 아픔은 문학의 위대한 힘이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을 “K문학의 쾌거”인 것처럼 축하하는 것이 나는 못내 어색하다. 마치 올림픽에서처럼 한국 문학이 보다 예쁘고 훌륭한 글을 뽑는 경연대회에서 다른 나라의 문학을 물리치고 더 나은 평가를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작품을 통해 형상화된 우리의 공동체가 지니고 있는 집단적 기억과 슬픔이 인류의 보편성으로 이해될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축하할 일이라기보다는 경건해야 할 일이고, 지금까지 작가가 이룬 성취만큼이나 앞으로 우리에게 많은 숙제가 남은 셈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 결정 이후 쏟아진 이야기들은 사실 일방적인 ‘추앙’의 기사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한강 작가의 작품을 둘러싼 ‘메타 스토리’는 충분히 생성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그것은 우리의 몫이라 생각한다. 예컨대, ‘소년이 온다’를 읽는 것은 5·18에 대한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집단적 기억을 공유하는 계기가 되겠지만, 또한 수많은 독자가 자기만의 이야기를 덧붙일 수 있는 이야기의 공간이 생긴 것이라고 본다. 그 공간은 한강 작가 덕분에 여느 때보다 아주 많은 사람이 말할 수 있고 서로를 들어줄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한 사람이 쓴 이야기가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틔우는 것이 문학이다.

‘채식주의자’를 읽은 사람이 수백만 명이 넘어서는 순간, 그리고 이들이 가부장, 여성, 환경, 소수자, 폭력, 예술에 대한 생각을 잠깐이라도 해본다면, 그리고 이들 중 1%라도 주변을 돌아보고 옆 사람의 슬픔을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우리 공동체는 적어도 그만큼 나은 곳이 되지 않겠는가. 내가 말하고 싶은 ‘메타 스토리’란 그런 것이다.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혹은 어제의 이야기가 새로운 이야기의 싹을 틔우고 새로운 이야기의 레이어를 만들어 오늘의 나와 우리에게 남기는 그런 흔적들. 그런 사소한 흔적들이 퇴적되어 세상은 바뀔 것이다.

노벨 문학상이 결코 추앙의 대상이 아니며 그것이 생성하는 ‘메타 스토리’가 더 중요하다는 점은 사실 2015년 수상자인 알렉시예비치의 작품들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수많은 보통 사람의 증언을 모으고 이들의 낮은 목소리를 통해 전쟁, 소비에트, 체르노빌이 남긴 고통을 담담하게 그린 작품들은, 또다시 수많은 사람이 읽고 풍부한 새로운 ‘메타 스토리’들을 만들면서 인류의 보편적인 자산과 지혜로 남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공론장이라고 하면 노벨 문학상만큼 좋은 공론장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수상 결정 이후 쏟아진 또 다른 뉴스는 서적 판매 사이트들이 마비되거나 책이 품귀되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책을 사려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한동안 한강 작가를 비롯한 문학 도서 읽기 붐이 불 것만 같다. 그러나 공동체로서의 우리가 문학적 감수성을 누릴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 특히 우리의 아들딸들에게 그런 기회를 누릴 준비가 됐는지는 의문이다.

문학은 근본적으로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 보는 것, 혹은 타인의 삶과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최소한의 토대가 아니겠는가. 공감하는 시민, 협력하는 정치를 우리 공동체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된 것도 결국 문학 교육의 실종과 맥을 같이하지 않나 생각한다. 우리는 그런 모범이 되고 있는가. 우리는 그런 후속 세대를 기를 수 있는가. 우리는 소설을 읽을 준비가 되었는가.

문득 이 지점에서 내일 재·보궐선거, 특히 서울시교육감을 뽑는 보궐선거를 생각한다. 정당 깃발조차 없이 빨강과 파랑의 색깔만 남아 있고, 역사 교육에 대한 진보와 보수의 앙상한 슬로건만 외쳐지는 선거이다. 메타 스토리는커녕 제대로 된 스토리도 없는 선거이다.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이끌 것이며 이들이 만들어갈 미래의 공동체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정말 소설을 읽을 준비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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