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타이아이를 기억하라[임용한의 전쟁사]〈336〉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0월 14일 2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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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가 페르시아군의 침공에 맞서 마라톤에서 전투를 벌일 때 아테네를 도와준 유일한 폴리스가 플라타이아이라는 작은 폴리스였다. 아테네는 감격했고, 이들을 우방으로 예우했다. 이렇게 시작된 페르시아 전쟁에서 아테네는 승리했고, 그리스의 강국이 되었다. 아크로폴리스에 파르테논 신전이 세워지고 그 앞에는 황금으로 만든 아테네 여신상이 섰다. 이 여신상에 입힌 금만 1t이 넘었다.

아테네가 과하게 번영하자 다른 도시가 반발했다. 이렇게 해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란 내전이 발발한다. 플라타이아이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테베로 가는 일종의 십자로였다. 스파르타와 테베가 동시에 플라타이아이를 노렸다. 플라타이아이는 오래된 의리를 지켜 아테네 편에 서기로 한다.

스파르타와 테베가 대병력으로 플라타이아이를 포위하고 공격했다. 플라타이아이인들은 도시 중앙 요새에 들어가 농성했다. 이 성은 긴 쪽 너비가 440m, 짧은 쪽이 350m밖에 되지 않는 타원형의 성이었다. 사람은 남자 480명, 여자 110명뿐이었다.

이 병력으로 반년 넘게 버텼다. 하지만 믿었던 아테네 군대는 소식이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육전을 포기하고 해전으로 승부를 내기로 결정했다. 플라타이아이 수비대 중에는 아테네 주민 80명도 있었지만 구출을 포기한다.

결국 플라타이아이인 절반은 야밤에 포위망을 뚫고 탈출해서 아테네로 도주한다. 나머지 병력은 몇 달을 더 버티다가 식량이 떨어져 항복하고 만다. 승리한 자들은 이 작은 성의 항전에 분노했던 모양이다. 이전의 포로 살해를 구실로 남자들은 모조리 죽이고, 여자들은 노예로 삼았다.

2000년도 전의 사건이지만 국제 정치는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의리는 없고, 약자에게 정의는 없다.

#아테네#페르시아 전쟁#플라타이아이#펠로폰네소스 전쟁#의리#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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