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으로 전공의 대부분이 수련 병원을 떠난 결과 내년 초 전문의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전공의 수가 예년의 5분에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료 예정 연차인 전공의 가운데 병원을 떠나지 않았거나 돌아온 사람은 576명으로 집계돼 올해 초 전문의 시험 응시자(2782명)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더구나 이 중 일부는 서류상으로만 잡힐 뿐 병원에 출근하지 않고 있어 실제 응시자 수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대형 병원은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전임의를 채용해 전공의의 부재를 일부 벌충해 왔다. 신규 배출 전문의가 대폭 줄면 전임의 충원이 어려워져 앞으로 의료 공백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특히 기존에도 인력이 모자랐던 필수 의료과목의 전문의 수급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심장과 폐를 다루는 심장혈관흉부외과는 내년엔 응시할 수 있는 전공의가 6명뿐이다. 기존 흉부외과 전문의는 내년에만 33명이 은퇴할 전망이다. 원래도 흉부외과는 대(代)가 끊길 위기였던 과목이었는데, 전공의 이탈로 연간 2만 건에 이르는 심장과 폐 수술을 장기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 전문의 112명을 배출한 산부인과는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인원이 12명에 불과하다. 지금도 양수가 터진 임신부가 병원 70여 곳에서 이송을 거절당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내년엔 어떤 사태가 발생할지 두렵기까지 하다.
상급종합병원의 전공의 비중을 대폭 낮추고 전문의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정부의 계획 역시 차질이 불가피하다. 전문의 부족 사태는 전공의, 의대생 배출이 병목 현상을 빚으며 장기화될 공산이 크다. 전공의와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가 안 보이고 있고, 그 여파로 신임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의 도미노 감소 사태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의정 갈등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의사 수를 늘리는 게 목적이었던 정부의 시도는 의사들의 반발에 부딪혀 신규 전문의 급감이라는 반대의 결과를 낳게 됐다. 당정이 의료계에 참여를 촉구한 여야의정 협의체는 가동을 시작한다고 해도, 증원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는 전공의들의 복귀를 이끌어내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가 갈수록 누적될 의료 공백을 정부가 감당할 방법은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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