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뭐라 하든 생각대로 밀고 나가고 행동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재희(김고은)와 성소수자라는 비밀을 숨긴 채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흥수(노상현). 이언희 감독의 ‘대도시의 사랑법’은 등장하는 남녀의 캐릭터만으로도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엮어져 갈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만든다. 어느 날 우연히 흥수의 비밀을 재희가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된다. 흥수가 “약점이라도 잡은 것 같냐?”고 자기보호 본능에 가까운 화를 내자, 재희는 흥수에게 말한다. “너가 너인 게 왜 약점이야?”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 청춘들은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방법을 찾아낸다. 그건 두 사람이 사귀는 사이인 척하는 것. 이로써 흥수는 성소수자가 아니냐는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고, 재희 역시 이 남자 저 남자 밝히고 다닌다는 소문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들은 동거하지만, 각자의 취향대로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아파한다. 남녀 간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일종의 동지애 같은 게 적어도 두 사람 사이에서는 피어난다. 세상의 편견을 벗어난 두 사람만의 자유지대랄까. 물론 그들 역시 사회 초년생이 되면서 취업과 결혼 같은 세상이 요구하는 틀 속으로 들어가며 평범해지지만 그때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말한다. 진짜 네가 되어 살라고.
부커상과 국제 더블린 문학상 후보에 오른 박상영 작가의 동명 소설집에 실린 ‘재희’를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보다시피 퀴어 영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된 건, 세상이 요구하는 무수한 ‘다움’이 주는 상처가 성소수자들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에 치여 나다움을 잊고 살게 된 이들에게 잠시나마 나답던 청춘의 한때를 떠올리게 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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