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소음 가득할 때
‘미니멀’은 나를 지키는 방패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지금 나’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의미 있는지 없는지 따져봐야
《미니멀 라이프, 그 ‘텅 빈 충만’
최근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미니멀 소비, 미니멀 수납, 미니멀 마인드 등 일상의 다양한 분야로 ‘미니멀’이 확대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더 소비하고, 더 관계를 맺고, 더 일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에 대한 반성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대 가치’의 모색이다. 하지만 세상이 삶을 ‘미니멀’하게 놔두지 않는다. 이것이 실제인지 미디어가 만들어낸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세상에 맛난 것이 너무 많다.》
또 세상을 살면 반드시 알아야 할 리스트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필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미니멀을 담는 보자기 역시 커져야 한다는 뜻이다. 더 이상 미니멀이 아니게 되는 셈이다. 게다가 아무리 내가 미니멀을 실천하려 해도 기존에 입던 옷, 책, 생활 도구, 가구 등이 바리케이드처럼 미니멀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고 있기에 내가 살았던 방식을 단박에 바꾸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미니멀 라이프가 과연 물건을 버리고 단순히 최소한으로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미니멀 라이프의 근원은 동양사상이다. 현대 생활의 바탕이 서구 사회에서 출발했지만 기존 사회에 대한 반성이자 대안으로 동양사상을 기반으로 한 생활 방식이 출현한 것이다. 중국 당나라 선종의 계파인 임제종을 만든 ‘임제의현’은 불법(佛法)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 있음을 이야기하면서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을 남겼다. ‘수처작주’는 공간적으로 내가 머무르는 곳을 보살피는 것이 나답게 사는 것의 시작이라는 뜻이고, ‘입처개진’은 시간적으로 내가 서있는 지금 여기가 진리의 시작이라는 의미다. ‘수처’의 공간적 실체는 집이다. 여기에 ‘미니멀 라이프’의 첫 번째 열쇠가 있다. 난 어떤 음식을 먹고 있는가? 내 방과 집은 깨끗이 정돈되어 있는가?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나와 어떤 관계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집에서 잘 쓰지 않는 물건은 무엇 때문일까? 등의 질문을 통해 나와 의미 있는 관계는 축적하고, 반대로 축소된 관계는 과감히 버린다. 미니멀 라이프는 최소한의 생필품을 두고 나머지는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와 맺은 관계를 살펴보고 그 관계를 통해서 나라는 존재를 쌓아가는 것이다.
두 번째 ‘미니멀 라이프’의 열쇠는 ‘지금’이라는 시간이다. 과거도 지나간 ‘지금’이고, 미래도 다가올 ‘지금’이다. 나라는 존재는 ‘지금’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같은 과거에 대한 집착은 현재의 자신을 부정하고 미래를 도모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미래만 생각하고 지금은 대충 살겠다는 태도 역시 꿈꾸는 미래를 실현하지 못하게 한다. 꿈은 오늘 실천해야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은 나의 시간을 축적해서 기억을 만들고 그 기억은 다시 추억을 만든다. 추억은 살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비바람과 추위를 견디는 내 삶의 뿌리가 된다. 결국 집은 나의 시간을 재료로 쌓아 올린 시공간이다. 지금을 중심으로 나의 생활을 정리하는 것이 미니멀 라이프의 기준점이 된다면 과거와 미래도 함께할 수 있다.
불교에서 깨달음이란 모든 집착에서 벗어남을 의미하는데 깨달음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도 집착이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불교에선 일상의 행위를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차를 마시는 행위부터 식사, 옷 입는 방식, 청소하는 방식 등 거의 모든 일상생활에 불교 사상이 스며들게 되었고 이후 일반 대중도 이런 일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미니멀 라이프는 외형적인 간소함이 목적이 아니라 일상에서 내가 사는 이유를 찾아가는 방식이다. 소음이 가득한 공간에 있으면 정신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삶에 소음이 가득할 때 미니멀 라이프는 나를 지키는 방패가 될 수 있다. 집착에서 벗어난다는 게 세상에 대한 단절이나 무관심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내 삶에 진정으로 다가가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믿음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태도다.
동양의 산수화는 자연을 바라볼 때 삼원법(三遠法)을 이용한다. 삼원법 중 첫 번째가 ‘고원(高遠)’, 멀리 높은 산이 있으면 누구나 산 정상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두 번째가 ‘심원(深遠)’. 산 정상에 오르면 누구나가 저 멀리 깊은 풍경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평원(平遠)’이다. 드넓은 평원을 보게 되면 누구나 고개를 돌리며 파노라마 뷰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산을 오를 때는 힘들지만 정상에 올라 멀리 하늘과 구름과 풍경을 바라보면 잠시나마 힘든 일상과 집착에서 벗어나 큰 숨을 쉬게 된다. 아무리 돈을 벌어도 부족한 것 같고, 명예를 가져도 부족한 것이 인간이지만 정상에 올라 드넓은 하늘과 대지를 보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온전히 마음이 가득 차게 된다. 이것이 비움으로 가득 차는 ‘텅 빈 충만’이다. 비움을 통해 채움을 이야기하는 지혜는 늘 가슴을 벅차게 한다. ‘미니멀’은 가진 것이 많고 적음이 아니다. 오히려 ‘미니멀’은 비움을 통해 나를 좀 더 채우는 역설적인 ‘맥시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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