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인정하는 용기” 회고록 통해 본 존경받는 영부인 조건[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0월 16일 23시 09분


최근 회고록을 출간한 전 미국 퍼스트레이디 힐러리 클린턴 여사(왼쪽)가 북 투어에 참석한 모습. 
사진 출처 사이먼 앤드 슈스터 출판사 홈페이지
최근 회고록을 출간한 전 미국 퍼스트레이디 힐러리 클린턴 여사(왼쪽)가 북 투어에 참석한 모습. 사진 출처 사이먼 앤드 슈스터 출판사 홈페이지
정미경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정미경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Personally and professionally I’ve come through so many highs and lows.”(개인적으로 직업적으로 많은 영광과 좌절을 거쳐 왔다)

미국 대선 시즌을 맞아 전직 퍼스트레이디 2명의 회고록이 잇달아 출간됐습니다. 힐러리 클린턴 여사와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입니다.

힐러리 여사는 역대 퍼스트레이디 중 가장 많은 4번째 회고록입니다. 앞서 나온 3권은 대권 도전을 목적으로 내놓은 책들이라 정치적 주장이 많았던 반면 이번 책은 77세 인생을 되돌아보는 진짜 회고록다운 회고록입니다. ‘come through’는 장애물을 넘어 목표 지점까지 왔을 때 씁니다.

반면 멜라니아 여사의 회고록은 성격이 모호합니다. 남편이 현역 대통령 후보인데 별로 정치적인 내용이 없고, 본인의 개인사를 자세히 소개한 것도 아닙니다. ‘college-application essay’(대입용 자기소개서) 같다는 조롱 섞인 평가도 나옵니다. 모두 옳은 얘기들로 채워졌지만, 깊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과 영부인은 퇴임 후 회고록을 쓰는 전통이 있습니다. 퇴임 후 삶이 회고록 집필에 에너지를 쏟을 만큼 평탄하다는 의미입니다. 영부인 회고록은 대통령 회고록보다 인기가 높습니다. 관찰자의 관점에서 권력 주변에서 벌어지는 뒷얘기를 흥미롭게 전해주기 때문에 읽기에 부담이 없고 메시지 전달도 확실합니다. 화제가 됐던 퍼스트레이디 회고록을 유형별로 알아봤습니다.

△“Why won’t you listen to me?”(왜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거야)

첫째, 자아도취형입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부인 낸시 레이건 여사 회고록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My Turn’(내 차례). 내가 말할 차례를 별러 왔다는 것입니다. 내용도 독합니다. 레이건 측근 정치인들이 줄줄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남편을 잘못 보좌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독하게 비난하는지 제목을 ‘My Turn’에서 ‘My Burn’(활활 태우다)으로 바꿔야 한다는 농담이 유행했습니다.

인사 관여 정황도 나옵니다. 회고록에서 화제가 된 한마디입니다. 백악관 비서실장을 해고하라는 부탁을 들어주지 않자, 레이건 대통령 앞에서 울면서 호소한 말입니다. 상대방을 다그칠 때 “why won’t you”로 시작합니다. 낸시 여사는 영부인 시절 정치 간섭, 사치 논란 등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회고록에서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I expected to be applauded.”(박수 받을 줄 알았다)

△“It all began so beautifully.”(그날은 아름답게 시작됐다)

둘째, 기록형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비화를 공개하는 데 중점을 둔 회고록입니다. 린든 존슨 대통령의 부인 레이디버드 존슨 여사의 ‘A White House Diary’(백악관 일기)는 대형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출간된 첫 퍼스트레이디 회고록입니다. 출판사의 전문적인 ‘코치’를 받으며 썼기 때문에 대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짚었습니다. 미국 현대사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만큼 관심을 끄는 사건은 없습니다. 800쪽 분량으로 역대 영부인 회고록 중 가장 두껍습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당시 부통령 부인 자격으로 케네디 암살 전후 상황을 가까이에서 관찰한 내용입니다. 회고록 첫 문장에 나오는 암살 당일 풍경입니다.

케네디 암살에 관한 정부 보고서보다 더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런 회고록은 그냥 나오지 않습니다. 역사의 기록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고 방대한 자료를 모으고 일찍 집필을 시작한 결과입니다. 퍼스트레이디 시절 오후 7시가 되면 방 앞에 이런 팻말을 걸어두고 집필에 몰두했습니다. ‘I Want to Be Alone.’(방해하지 말아줘)

△“It is a guilt I will carry for the rest of my life.”(내가 평생 지고 갈 죄책감이다)

셋째, 참회형입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부인 로라 부시 여사는 10대 시절 부주의한 운전으로 교통사고를 일으켜 상대 운전자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고 경위를 회고록 ‘Spoken From the Heart’(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들)에서 처음 털어놨습니다.

로라 여사의 참회입니다. 감정을 지고 간다고 할 때 ‘carry’를 씁니다. 미국인들은 이해해주는 분위기였습니다. 사건을 축소하지 않고 솔직하게 고백한 점을 높이 샀습니다.

회고록은 아마존이 주관하는 굿리즈 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굿리즈 상의 추천 이유는 이렇습니다. “Nobody is perfect. The first lady is no exception. This book shows that what makes a good person is the courage to accept his/her own mistakes.”(완벽한 사람은 없다. 퍼스트레이디도 예외가 아니다. 좋은 사람을 만드는 것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라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매주 월요일 오전 7시 발송되는 뉴스레터 ‘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에서 더욱 풍부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멜라니아 트럼프#회고록#영부인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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