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감성의 그림[이은화의 미술시간]〈341〉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0월 16일 2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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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오랫동안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의 원천이었다. 19세기 영국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에게도 문학이 중요했다. 그는 특히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이나 앨프리드 테니슨의 시를 시각적으로 해석한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다.

‘가을 잎’(1856년·사진)은 그가 27세 때 그린 것으로 테니슨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림은 해 질 무렵, 소녀들이 정원에서 낙엽을 모아 태우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왼쪽의 두 소녀는 불 앞에서 볼이 빨개진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노을빛을 뒤에서 받아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두 소녀는 화가의 처제 앨리스와 소피 그레이다. 중산층 복장을 한 이들과 달리, 오른쪽 두 소녀는 노동자 계층 옷을 입고 있다. 아마도 인근에 사는 소녀들일 테다. 황혼 무렵의 어두운 하늘과 황금빛의 낙엽 더미, 양쪽으로 나뉜 소녀들의 시선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가을의 서정과 함께 소녀들의 감정까지 느끼게 하는 매혹적인 그림이다.

이 그림은 완성된 바로 그해 왕립아카데미 전시에 출품돼 큰 인기를 끌었다. 유명 평론가 존 러스킨은 ‘황혼을 완벽하게 그린 첫 사례’라며 극찬했다. 밀레이가 참조했던 테니슨의 시는 ‘눈물이, 부질없는 눈물이’라는 서정시로, 복된 가을 들판을 바라보다가 가버린 날들을 추억하며 부질없는 눈물을 흘린다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가을의 서정을 아름답게 묘사한 것 같지만, 동시에 인생의 덧없음과 회한도 상징하는 그림인 것이다.

가을은 찬란하고 풍요롭다. 그러나 가을이 가면 혹독한 겨울이 오는 법. 밀레이는 낙엽을 태우는 소녀들을 통해 젊음과 아름다움의 덧없음을, 죽음의 불가피함을 우리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문학적 감성으로 무장한 그림으로 당대 최고의 명성과 부를 얻은 그였지만,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헛되고 덧없음을 잘 알기 때문일 테다.

#문학#가을잎#영국 화가#존 에버렛 밀레이#문학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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