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느 젊은 독자의 메시지를 받았다. 미래는 막막하고 생활은 불안하고 사랑은 떠나갔고 자신은 초라하고 마음은 부서졌다고. 견디기가 힘들다고. 메시지가 울고 있었다. 어쩌면 좋을까. 내 이야기를 건네줄 수밖에.
등허리까지 긴 머리카락을 목덜미까지 싹둑 잘라본 적 있다. 여러 면접에 낙방하고 취업 준비로 지쳐가던 시기에 실연까지 겪었을 때, 더는 못 견디겠다 싶어서 무작정 미용실을 찾아갔다. 그곳엔 산전수전 다 겪어봤을 법한 우락부락한 인상의 남자 미용사가 있었다.
“짧게 잘라주세요.” 의자에 앉자마자 주르르 울던 나. 염치없는 이상한 손님이었다. 하지만 그땐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상황이나 사람을 헤아릴 새가 없었다. 미래는 막막하고 생활은 불안하고 사랑은 떠나갔고 나는 초라하고 마음은 부서졌다. 넘칠 듯 위태로웠던 양동이 물을 한꺼번에 뒤집어쓴 것처럼, 모든 감정이 압도적으로 나를 덮쳐왔다.
미용사는 내 뒤에 앉았다. 커다란 손바닥으로 긴 머리를 매만지고 빗겨주다 어깨까지 잘라주었다. “더 짧게요.” 턱선까지 잘라주었다. “더요.” 그가 멈칫하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등을 기대요. 머리를 만져주면 마음이 좀 나아지거든.” 밤새 그렇게나 울고도 눈물이 삐져나와 곤란했던 나에게, 그는 달래듯이 머리를 만져주며 담담하게 자신의 실패담을 들려주었다.
그날 단발머리가 된 나는 부은 눈으로 미용실을 나섰다. 바람이 불었다. 가로수 나뭇잎이 흔들리고 짧은 머리카락이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일렁일렁 나뭇잎 사이로 가을 햇빛이 쏟아졌다. 어느 작가는 이별한 후에 쏟아지는 햇빛을 보며 “가을 햇빛에 수혈을 받은 기분”이었다고 썼다던데. 나도 그랬다. 우두커니 선 채로 눈을 감고서 가만히 바람과 햇빛을 받아들였다. 세상 모든 건 흔들리며 살아있었다.
그날의 나처럼, 때때로 긴 머리를 싹둑 잘라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나를 찾는 청춘들을 만난다. 자기 자신조차도 어찌할 바 몰라 아무것도 숨기지 못하는 투명한 얼굴들이 나에게 묻는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럴 때마다 그 가을에 만난 미용사를 떠올린다. 여기 앉아 기대 보렴. 따져 묻지 않으려 애쓰면서 따뜻한 것들을 동원하면서 엉망진창으로 지나왔던 내 실패담을 들려줘야지. 솔직하게 울어본 눈이 예쁘구나. 가만가만히 눈을 마주 보면서. 괜찮다는 말 한마디보다도 조심스럽게 에둘러 건네는 위로.
여전히 나는 기억한다. 나를 달래주듯이 뒷머리를 만져주던 손길을, 낯설어진 머리와 울고 난 얼굴로 내디뎠던 걸음을, 쏟아지는 가을 햇빛에 수혈을 받던 기분을. 이 또한 지나가리라. 몹시 아프게도 지나가리라. 그러나 그 시간도 훗날 그리운 손길처럼, 따스한 바람처럼 내게 다시 돌아와 다른 사람에게 건네줄 수도 있을 거야. 한 시절이 지나갔고 나는 괜찮아졌구나. 깨닫는 순간조차도 우리는 흔들리면서 살아있다. 살아있기에 살아간다. 여전히 나는, 누가 머리를 만져주면 금방 잠이 든다. 그럴 때마다 온전히 사람에게 기대어 버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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