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뿐인 유턴 지원… ‘기업하기 힘든 나라’로 돌아오겠나[동아시론/양준모]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0월 17일 2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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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해외진출 기업 2816곳, 복귀는 22곳뿐
세제 등 인센티브 미흡하고 늑장 지원 한계
노사관계-규제 등 경영 환경부터 개선 필요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유턴법)’이 2014년부터 시행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실효성을 의심받고 있다. 미중 갈등이 심해지고 공급망 리스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혼란에 빠져 있지만, 해외로 나간 기업들은 국내로 복귀하는 대안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거듭 돌아오라고 외치는데도 지난 5년간(2019∼2023년) 국내로 돌아온 기업은 108개에 그쳤다. 그나마도 고용 창출과 생산 유발 효과가 큰 대기업은 단 네 곳뿐이다. 작년에만 해외로 나간 국내 기업이 2816개인데, 국내 복귀 정책으로 들어온 기업의 수는 22개에 불과한 게 참담한 현실이다.

한국 기업의 유턴이 지지부진한 것과는 달리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세계 각국은 세제와 지원금 혜택을 강화하며 리쇼어링(해외 생산기지의 본국 회귀) 정책을 경쟁적으로 펼치고 있다. 애플과 인텔은 미국으로, 도요타와 혼다는 일본으로 돌아갔다. 리쇼어링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미국이다. 2010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리메이킹 아메리카’의 기치를 내걸고 기업의 국내 복귀를 유도하기 시작했고 2011∼2019년 복귀 기업의 수가 3327개에 달했다. 도널드 트럼프, 조 바이든 행정부로 바뀌면서도 리쇼어링 정책은 중단 없이 이어졌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지원법(칩스법) 등을 통해 자국 기업은 물론 해외 기업의 자국 내 투자까지 적극 유도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미국은 시장 접근성이 높은 장점이 있지만, 인건비와 공장 건설 비용 등 비용 측면으로만 보면 어느 나라보다 불리한 국가다. 하지만 정책 보조금, 연구개발 생태계의 경쟁력, 브랜드 이미지 제고 등 각종 인센티브를 통해 이를 상쇄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이 ‘친기업의 나라’라는 점이 강력한 유인으로 작용한다.

반면 한국은 ‘기업 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인식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만 바라보고 기업들이 복귀를 결심하기는 쉽지 않다. 해외 진출 기업을 끌어들이려면 기업 경영 환경부터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근로 시간과 임금을 노사 합의가 아니라 정부가 결정하는 나라, 주주의 의결권을 제약하고 국민연금이 기업의 경영권에 개입하는 나라, 지배주주가 광범위한 책임을 지고 신규 사업에 참여하면 제재 받는 나라, 상법 개정 등 불합리한 규제 법안이 쏟아지는 나라, 그리고 노동조합이 경영권을 넘보고 불법 파업을 일삼는 나라에서 기업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합리적인 노사관계 속에서 창의적인 기업 경영이 보장돼야 기업이 떠나지 않고, 떠난 기업이 돌아오며, 외국 기업들도 우리나라를 허브 지역으로 활용할 것이다.

정책 당국의 기대와 복귀하려는 기업의 목적이 서로 맞지 않는 것도 문제다. 해외 진출 기업은 공급망 리스크 저감, 연구개발 인력 수급,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활용, 브랜드 이미지 제고, 경영 효율화 등의 이유로 국내 복귀를 검토한다. 이를 위해 기업은 복귀 목적에 적합한 입지를 직접 선택하려 한다. 반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인구소멸을 막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어떻게든 기업을 불러들이는 데만 관심을 가진다. 복귀하는 기업의 장기적 성공에 대해서는 제대로 고민하지 않는다. 국내 복귀 기업이 약속된 정부의 지원을 적기에 받지 못해 폐업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명확한 기준과 투명한 결정, 그리고 적기 지원 등 정책 집행 과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정부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국내 복귀 기업의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유턴지원전략 2.0’을 내놨다. 우선 국가의 재정자금 지원 기준을 명확히 했다. 공급망 문제의 핵심 분야인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분야에서 국비 지원 한도를 상향했다. 기업의 신규 해외 투자를 제한하는 조항을 개선하고 유턴 기업에 대한 지나친 경영 개입은 자제하기로 했다. 첨단·공급망 핵심 기업의 입지 지원을 위해 국가첨단전략산업·소부장 특화단지를 지원 우대 지역에 추가했다. 복귀 승인 이후 투자 증액분에 대해서도 지원하는 등 정책의 유연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이런 전략만으로 유턴법의 유효성 논란을 극복하기에는 미흡하다. 해외 진출 기업들의 고민을 충분히 들어 해결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곳곳에 숨겨진 불필요한 규제를 풀고 기업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다. 필요하면 산재된 규제를 일시에 해소하는 ‘기업활력기본법’ 같은 특별법을 만드는 것까지 고민해 봐야 한다. 국내로 복귀하는 기업이 성공하고 이에 따라 국내의 산업 생태계가 강화되는 선순환 모델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노사관계#규제#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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