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만난 사람]“앞으로 다큐멘터리로 나아가려 합니다”… 노벨상에 닿게 한 한강의 14년 전 결심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0월 17일 23시 09분


스승 정과리 연세대 명예교수가 말하는 한강
개인간의 고통-핍박 다룬 소설 쓰다… 석사과정때 역사성 중시로 방향 전환
“한강, ‘책을 어떻게 찢어요’ 신성시… 작게 말해 가볍게 찰랑대는 물같아”

연세대 석사 과정에 있던 마흔한 살의 한강이 ‘히랍어 시간’을 펴낸 뒤 본보와 가진 2011년 인터뷰 당시 모습. 동아일보DB
연세대 석사 과정에 있던 마흔한 살의 한강이 ‘히랍어 시간’을 펴낸 뒤 본보와 가진 2011년 인터뷰 당시 모습. 동아일보DB
《“앞으로 다큐멘터리 쪽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2010년 연세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던 당시 마흔 살의 소설가 한강은 교수에게 불쑥 이런 얘기를 한다. 그때는 몰랐다. 이 한마디가 나중에 일어날 거대한 파장의 전조일 줄은.

이를 기점으로 한강(54)의 문학은 큰 변화를 맞는다. ‘채식주의자’(2007년)처럼 개인이 다른 개인을 핍박하는 구도를 넘어 국가와 같은 거대 집단이 개인에게 큰 상흔을 남기는 역사적 고통을 증언하게 된 것. 2010년 이후 발표한 주요 작품인 ‘소년이 온다’(2014년)는 광주 5·18민주화운동을, ‘작별하지 않는다’(2021년)는 제주 4·3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스웨덴 한림원이 주목한 것도 이 부분이었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것이 노벨 문학상의 시상 배경이었다.》


2010년대 초 한강의 석사 논문을 심사했던 정과리 연세대 명예교수는 “노벨상을 받을 수 있겠다 생각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고 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당시 한강의 석사 논문을 심사했던 정과리 연세대 명예교수(66)는 이렇게 말한다. “당시 왜 다큐멘터리로 가려고 하는지 잘 몰랐는데 이제야 이해가 되더군요. 한강은 줄곧 상처 입은 사람들 얘기를 해왔지만 그게 굉장히 내적 성찰로만 드러나니까 역사나 사회하고는 별로 관계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죠. 한강은 결국 한국 사회의 어떤 중요한 사건과 역사적 흐름이 상처 입은 사람들과 다 연관이 돼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큐멘터리로 가겠다고 말했던 거죠.”

국내 대표적인 문학평론가인 정 교수를 16일 오전 서울 은평뉴타운의 자택에서 만났다. “한강을 만나야지 왜 나를 찾아왔냐”는 게 첫마디. 그러면서도 그는 옛 기억을 더듬어 제자의 일화를 하나라도 더 전해주려고 했다. 정 교수는 독창적 비평으로 국내 최고 비평가로 꼽히던 김현(1942∼1990)의 서울대 불문과 직계 제자이기도 하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석사 과정생이던 한강이 연구실에서 교수와 대화를 나눴다. 교수가 “요즘엔 책이 너무 많아져서, 보관할 공간이 없다. 그래서 책을 찢어서 스캔을 해서 본다”고 말하자 한강은 깜짝 놀란다. “선생님, 어떻게 책을 찢어요?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가 있어요?”

정 교수는 말한다. “한강은 책을, 문학을 신성하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보관할 공간이 없어 책을 찢어서 스캔했을 뿐인데 한강은 좀처럼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문학을 신성시하던 작가가 노벨상을 탔다. 정 교수도 깜짝 놀랐다. “이미 (2016년 부커상 수상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받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만 아주 빨리 찾아왔죠. 보통 완성기에 이르는 작가들에게 주는 게 관행이거든요. 그런데 한강은 아직도 열심히 쓰고 있고, 진화 중인 작가입니다. 그렇기에 한림원이 굉장히 파격적인 변화를 보인다는 생각도 듭니다.”

한강은 10일 노벨상 발표 이후 기자회견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한강 책을 펴낸 출판사들은 기자회견 장소까지 대관했지만 한사코 고사했다. “노벨상으로 바뀐 것은 없다. 조용히 글 쓰고 싶다”는 게 한강의 생각.

“그 친구는 한번 마음을 먹으면 옆에서 누가 말해도 잘 안 바뀌는 타입입니다. 또한 아버지(한승원 소설가)는 굉장히 개방적인 스타일인데, 반대인 측면이 있죠. 학교에서 봤을 때도 워낙 조용하고, 어디 숨어 있는 것 같고, 눈에 띄지 않는 친구였죠.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굉장히 주체적인 모습이 있고,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기도 합니다.”

한강의 ‘당당한’ 모습은 2005년 이상문학상 시상식에서 볼 수 있었다. 중편 ‘몽고반점’이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작품은 비디오 아티스트인 ‘나’가 처제의 엉덩이에 남아있는 몽고반점을 상상하며 몸에 대한 원초적 욕망과 강한 예술적 영감에 빠진다는 내용. 당시 문단의 한참 선배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은 등장 인물 중 보디페인트 칠을 하는 형부에 ‘꽂혀서’ 이런저런 심사평을 남겼다. 하지만 수상자인 서른다섯의 한강은 시상식에서 잘라 말했다. “저는 그런 의도를 가지고 쓴 것이 아닙니다.” 이후 시상식 분위기가 묘해졌다는 게 문학계에 오래 전해지는 얘기다.

한강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하다. 바로 옆에 있어도 들릴락 말락하다. 2011년 소설 ‘희랍어 시간’을 펴냈을 때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때 작가의 목소리가 좀처럼 잘 들리질 않아 귀를 쫑긋 세웠던 기억이 있다.

정 교수는 이런 한강의 화술을 ‘말을 조리 있게 잘하면서도, 아주 작게 말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또 이런 화법을 소설 작법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것. “한강의 작품을 읽다 보면 굉장히 사적인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가만히 들어보면 이게 아주 가볍게 찰랑찰랑거리는 물 같아요. 그런데 들여다보면 그 밑에 역사라든지, 사회라든지 그런 문제들이 숨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강의 소설에는 시도 녹아들어 있다. 스웨덴 한림원이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밝힌 것도 그 까닭. 그도 그럴 것이 한강은 1993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먼저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 잡지의 편집동인 중 한 명이 정 교수였다. 다만 당시 연세대에 있지를 않아서 한강이란 사람을 개인적으론 모를 때였다. “편집동인의 만장일치로 등단시키는데 한강도 마찬가지였죠. 굉장히 담백한 수채화 같은 시들이었습니다. 당시는 이성복, 황지우를 필두로 이미지가 굉장히 화려한 시들이 문단에서 각광을 받았는데 한강의 시는 그렇지 않았죠.”

한강의 석사 논문 표지와 한강이 남긴 감사말. 정과리 교수 제공
시에 대한 관심은 천재 시인 이상(1910∼1937)으로도 이어진다. 정 교수가 심사했던 한강의 석사 논문 제목은 ‘이상의 회화와 문학 세계’. 시인이자 소설가, 건축가였던 이상을 이해하기 위해 한강은 문학과 미술에 동시에 접근하는 흔치 않은 시도를 펼쳤다. 작가 이상과 그림에 대한 관심은 그의 문학을 미학적으로 더욱 끌어올린다. “한강이 어떤 내적 감성을 회화적 이미지로 치환시키는 것은 언어의 미적인 부분을 중시하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큰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 있죠. 특히 채식주의자 연작 중 한 편인 몽고반점의 회화적 매력은 부커상 수상을 이끄는 등 해외에서 굉장히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냈습니다.”

한강이 노벨상에 닿기까지 그의 작품을 해외에 소개한 번역자들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채식주의자’의 경우 무려 31개 언어로 번역이 됐으니 31명 해외 번역가들의 숨은 조력이 있었던 셈. 그중 영어본을 맡은 영국 출신의 번역가인 데버라 스미스(36)는 한강과 부커상을 공동 수상하기도 했다. 정 교수는 스미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케임브리지대를 나온 번역가들은 아시아권이라 하면 보통 중국어, 일본어를 택하는데 그 친구가 한국어를 택한 걸 보면 굉장히 성취욕이 있는 친구죠. 본인 스스로도 상당히 어떤 감수성과 문장력을 갖고 있으니 영국 독자들이 어떻게 하면 책을 읽을 것인가 직관적으로 파악해서 번역을 한 거죠.”

하지만 스미스의 번역본이 나온 뒤 국내에선 오역 논란이 일기도 했다. 몇몇 평론가들이 문제를 제기했고, 정 교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이제 의역과 오역의 합리적인 절충점을 찾는 것이 한강의 노벨상이 남긴 또 다른 과제가 됐다는 말도 나온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이 한 주 지났지만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수상 발표 5일 만에 한강의 책들은 판매량 100만 부를 넘겼으며, 해외 아마존 문학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한강의 수상은 문학의 고급화를 상징하는 봉우리 같은 것’(소설가 이문열)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정 교수는 아직 남은 숙제도 많다고 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1982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후 남미 소설의 붐이 일었죠. 마르케스 말고도 다른 작가가 소개되며 외연을 넓힌 것에는 남미 소설 특유의 색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강 등 일부 작가가 개인적 성취를 거두는 것을 넘어서 한국 문학 전체를 아우르는 특유의 색채를 찾아야 한국 문학이 더욱 널리 읽힐 것입니다.”

정과리 명예교수
△1958년 대전 출생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서울대 불어불문과 졸업
△1984년 충남대 불어불문과 전임강사
△1986년 충남대 불어불문과 조교수
△1993년 서울대 불어불문학 박사
△2000년 연세대 국어국문과 교수
△2005년 대산문학상 평론부문
△2015년 편운문학상 평론부문
△2023년 연세대 국어국문학 명예교수

#한강#스승#정과리#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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