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50개 변수로 의사 추계’, ‘17년간 점진적 증원’… 갈등 없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0월 20일 23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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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현지 시간) 오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시 ‘의료인력 수급 추계 기구(ACMMP)’ 회의실에서 사무국 직원들이 정기 회의를 열고 있다. 이날 회의에선 도서 지역 인력 배치 방안과 인포그래픽 보고서 내용 등이 논의됐다. 위트레흐트=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의대 2000명 증원’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의 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동아일보가 네덜란드와 일본을 찾아 의사 추계 및 양성 시스템을 취재했다. 네덜란드는 의료인력수급추계기구(ACMMP)를, 일본은 후생노동성 산하에 의사수급분과회를 운영하고 있다. 네덜란드 ACMMP는 정부 예산을 지원받고 일본 의사수급분과회는 정부 산하에 설치됐지만 일절 정부의 개입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네덜란드 ACMMP 사무국은 의사 2명을 포함해 노동, 교육, 데이터 등 전문가 15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의료 직역별 전문가 100여 명과 협업해 3년마다 적정 의료 인력을 추계한다. 신규 배출 인력, 의사 양성 기간, 평균 근로 시간 등 기본 변수뿐만 아니라 감염병 발생 가능성, 고령화에 따른 의료 수요 등 미래 변수까지 모두 50가지 데이터를 활용한다. 2년 이상 데이터만 수집할 만큼 정밀한 추계에 공을 들인다. ACMMP는 ‘오래 계획하고 자주 추계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정부와 의료계는 그 결과를 존중한다.

2008년부터 의대 정원을 늘려 온 일본은 투명한 논의와 점진적 증원을 통해 한국과 같은 사회적 갈등을 피할 수 있었다. 의사 13명을 포함해 모두 22명으로 구성된 의사수급분과회는 회의마다 발언자 명단과 주요 발언이 담긴 회의록을 전부 공개한다. 이렇게 도출된 객관적 근거에 기반을 두고 17년간 의대 정원 1778명을 점진적으로 늘려 올해 9403명이 됐다.

의사 수 추계에 참여한 네덜란드와 일본의 전문가들은 의대 증원의 근거와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밝혀 신뢰를 쌓지 않으면 의료계 동의를 얻을 수도, 국민을 설득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2월 일본이 17년간 늘린 의대 정원보다 많은 2000명을 깜짝 발표하면서 그 정책적 판단에 대한 근거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의대 증원 등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해 28차례 열린 의정현안협의체에서도 거론되지 않았던 숫자다. 더구나 회의록조차 남기지 않은 ‘깜깜이’ 협의였다. 정부가 뒤늦게 의료인력 수급 추계위원회를 출범시키겠다지만 의정 간 신뢰가 없으니 의료계는 참여를 거부한다. 의대 증원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탓에 이젠 의료 개혁 자체가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네덜란드#일본#의대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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