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의 인생홈런]20년 양궁 대표 “끝” 오진혁 “낚시로 스트레스 해소”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0월 21일 23시 06분


오진혁이 태국 전지훈련 중 인근 강가에서 잡은 자이언트 메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오진혁 제공
오진혁이 태국 전지훈련 중 인근 강가에서 잡은 자이언트 메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오진혁 제공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오진혁(43)이 정들었던 활을 내려놨다. 한국 남자 양궁의 맏형으로 20년간 태극마크를 달았던 그의 마지막 대회는 지난달 열린 회장기대학실업양궁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그는 일반부 단체전 동메달을 땄다. 개인전에선 입상하지 못했지만 마지막으로 쏜 화살을 정확히 10점 과녁에 명중시키며 피날레를 장식했다. 2021년 도쿄 올림픽 남자 단체전 결승전에서 마지막 화살(10점) 시위를 놓은 뒤 “끝”이라고 외쳤을 때와 마찬가지였다.

지난달까지 후배들에게 “형”으로 불렸던 그는 이달부터 “코치님”이 됐다. 지도자 데뷔전도 무난히 치렀다. 지난주 열린 전국체육대회에서 그가 이끈 제주(현대제철)는 남자 일반부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소속 선수 남유빈은 남자 일반부 개인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오진혁은 “뒤에서 지켜보는데 너무 긴장됐다. 차라리 내가 나가서 활을 쏘는 게 훨씬 편하겠다 싶더라”며 웃었다.

그는 대기만성형 선수였다. 올림픽 첫 출전은 31세이던 2012년 런던 대회였다. 런던에서 그는 한국 남자 양궁 선수 최초로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의 선수 인생이 바뀐 계기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탈락이었다. 분명 탈락이었지만 뭔가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았다. 하루의 휴식도 없이 선발전 다음 날부터 다시 활을 잡았다. 2008년 한 해 동안 그는 설날과 추석 당일 딱 이틀만 쉬었다. 나머지 363일은 미친 듯이 활을 파고들었다. ‘이렇게 쏘면 되는구나’ 하는 느낌이 딱 왔다. 오진혁은 “나만의 루틴이 생긴 뒤로는 더 이상 대표 선발전이 두렵지 않았다”며 “경기가 언제 열리더라도 괜찮을 만큼 장비를 챙기고 마음을 다잡았다. 한번 오른 자리에서 내려가기 싫어 더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올림픽에서 금 2개, 동메달 1개를 땄다. 또 2010년 광저우 대회부터 2023년 항저우 대회까지 아시안게임에 4회 연속 출전해 금메달 3개를 목에 걸었다.

오랫동안 그를 괴롭힌 건 부상이었다. 과도한 훈련량 탓에 2011년부터 시위를 당길 때마다 오른쪽 어깨에서 ‘뚝’ 하는 소리가 났다. 2017년 어깨 회전근 4개 중 3개가 끊어져 있다는 병원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오진혁은 “마지막 한 개의 근육이 끊어질 때까지 해 보자”며 다시 사대(射臺)에 섰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어깨 근육을 지키기 위해 그는 밴드 운동과 수영으로 보강 운동을 꾸준히 했다. 하체는 웨이트트레이닝과 함께 하루 40분가량의 유산소 운동으로 단련했다. 승부 세계의 스트레스는 낚시로 풀었다. 진천선수촌 생활을 할 때 휴일이면 팀 후배인 김종호와 함께 인근 저수지에서 붕어를 낚았다. 외국 전지훈련을 가서도 틈틈이 낚싯대를 드리웠다.

지도자로 첫발을 디딘 그는 자신이 양궁을 통해 느꼈던 성취감을 제자들도 함께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장기적인 꿈은 진천선수촌장이 되어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다. 그는 “태릉과 진천선수촌에서 20년간 생활했다. 선수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잘 안다. 언젠가는 선수촌장이 돼 선수들과 함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싶다”고 했다.

#오진혁#양궁#은퇴#코치#지도자#낚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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