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K-팝 스타 블랙핑크 로제와 미국 팝스타 브루노 마스가 함께 만든 ‘APT.’ 뮤직비디오 영상이 공개됐다. 두 팝스타의 협업은 단연 화제였다. 영상은 공개 하루 만에 유튜브 조회 수 4000만 건을 훌쩍 넘었다. ‘21세기 마이클 잭슨’으로 불리는 브루노 마스가 K-팝 스타와 함께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만들 것이라고 10년 전엔 상상이나 했겠나. K-팝은 아시아의 한계를 뛰어넘어 한 단계 더 진화했다.
브루노 마스와 협업 만든 ‘K-소프트파워’
두 스타의 만남만큼 흥미로운 건 음악에 깔린 진한 한국 감성 코드다. 영어로 노래를 부르지만 소재는 한국 젊은이들의 술자리 게임이다. 브루노 마스가 ‘아파트 게임’을 하며 벌주를 마시고, 노래 중간에 “건배”를 외치거나 태극기를 흔드는 영상을 보면서 미국인들은 한국 문화에 빠진다. 아파트먼트를 한국식으로 줄인 아파트를 구글로 검색하고 한국 청년들의 술자리 문화를 궁금해한다.
뉴욕에서 20년째 살고 있는 한 교포는 “요즘 K자만 붙어도 인기”라며 “코리아타운 한국 노래방은 예약해야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김치 불고기 김밥 등 한국 음식이 유행하면서 뉴욕 한국문화원에서 한국의 반찬을 소재로 한 대담까지 열렸다. 미국인에게 ‘사이드 디시(side dish)’라고 설명하던 반찬은 이제 우리말 그대로 ‘Banchan’이라고 쓴다.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기 때문이다.
세계인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운다는 건 K-콘텐츠 경험을 촉진하는 소비자본(Consumption Capital)이 세계 시장에서 차곡차곡 축적되고 있다는 뜻이다. K-콘텐츠가 소비될수록 문화와 지식을 토대로 한 소프트파워(연성권력)가 커지고 한국 상품과 서비스의 수출에 도움을 주는 ‘코리아 프리미엄’이 생긴다. K-푸드가 인기를 끌면 한국식 젓가락, 그릇, 식재료 등 관련 상품과 한국 음식 체인점 같은 다양한 서비스 수출도 늘어난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K-콘텐츠를 1억 달러 수출할 때 소비재 수출이 1억8000만 달러 증가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K-콘텐츠의 성가에 박수만 칠 게 아니라 소비자본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산업적, 경제적 부가가치를 키워야 한국 경제의 활로가 뚫린다.
‘하드파워’ 중국과 맞설 소비자본으로 키워야
K-콘텐츠가 쌓아올린 소프트파워는 과학기술과 제조업을 무기로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남중국해에서 주변국과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의 하드파워와 시장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경쟁력이다. 필리핀 매체 필리핀스타의 편집장은 칼럼에서 “필리핀인은 K-팝 K-드라마 떡볶이 빙수 삼겹살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며 “한국은 해상 영토를 빼앗거나 경제적 협박으로 교역 상대국을 소외시키지 않고 소프트파워를 이용해 세계를 정복했다”고 평가했다.
소프트파워는 중국 밖 시장을 개척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한국은 1970, 80년대 중동에서 건설 노동자들을 보내 달러를 벌었고 2000년대는 중동 원전 수출에 도전했다. 요즘은 엔터테인먼트, 로봇, 인공지능(AI) 등의 소프트파워로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와 기술 협력을 추진하고, CJ그룹 이재현 회장이 사우디를 방문해 엔터테인먼트 등에 대한 투자와 협력을 논의할 정도로 중동도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인정하고 있다.
한국은 미 US뉴스와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이 발표하는 문화적 영향력 순위에서 2017년 세계 31위에서 올해 7위로 상승했다. 일본은 5위, 중국은 14위다. 일본을 따라잡고,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려면 소프트파워에 대한 국가적 관심과 집중 투자가 더 필요하다. 브루노 마스와 로제의 협업처럼 세상을 놀라게 하는 도전도 더 많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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