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회동했을 때 대통령실은 통상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거나 대화하는 모습을 담은 ‘투샷’ 사진을 배포한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 여당 대표와 만날 때도 그랬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그제 오후 차담(茶談)은 과거와 다른 이례적인 장면으로 가득했다. 특히 대통령실이 배포한 사진들은 이번 면담이 얼마나 삭막하고 냉랭했는지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 준다.
▷사진 중엔 단 한 장도 윤 대통령과 한 대표 두 사람만 나온 온전한 ‘투샷’ 사진이 없었다. 사진 9장 중 7장은 산책 장면, 2장은 면담 장면이었는데, 그중 두 사람에게 포커스를 둔 ‘투샷’처럼 보이는 사진들도 모두 두 사람 사이 또는 뒤편에 다른 사람의 모습이 들어가 있다. 일부러 ‘둘만 나란히 있는 사진’을 외면한 것일까. 한 대표가 쇄신을 요구한 ‘김건희 라인’으로 알려진 비서관이 두 곳에나 등장한 것도 뒷말을 낳았다.
▷차담 사진도 마찬가지다. 한 대표가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과 나란히 앉아있고, 윤 대통령은 긴 사각형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앉아 두 팔을 쭉 펴고 있다. 윤 대통령 앞에는 면담 프로토콜에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펜과 메모지조차 없다. 당초 한 대표 측은 원형 테이블을 요청했으나 대통령실이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자리 배치부터 표정, 몸짓까지 위와 아래를 명확히 구분하는 구도였다. 이러니 “검찰 취조실 같았다”는 말까지 나온다. 한 대표를 여당 대표로 인정하지 않고 부하 검사 대하듯 했다는 지적이다.
▷사실 이번 면담은 시작부터 끝까지 어색한 장면의 연속이었다. 면담은 20분 정도 늦게 시작했다. 영국 외교장관 접견 때문에 늦었다지만 한 대표는 야외정원에서 선 채로 대기했다고 한다. 오후 4시 55분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면담 테이블엔 ‘우리 한 대표가 좋아한다’며 윤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다는 제로 콜라가 놓였다. 면담은 오후 6시 15분에 끝났다. 요청 한 달 만에 성사된 자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윤 대통령의 만찬 일정 때문이었다는데, 윤 대통령은 한 대표를 보낸 뒤 추경호 원내대표를 만찬 자리로 불렀다.
▷사진기자들은 대통령 행사마다 수백 장의 다양한 장면을 찍은 뒤 그날 행사의 의미를 가장 함축적으로 담은 몇 컷을 보도한다. 대통령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사진만 골라 배포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과연 누가 골랐고 그 의도는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진다. 대통령실이 선택한 9장의 사진은 ‘용산의 눈’으로 본 이번 면담의 ‘격’과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하대나 박대의 의미를 담고자 했다면 충분히 전달됐다고 본다. 다만 그래서 뭘 얻었는지는 깊이 곱씹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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