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박장범 앵커(54)는 ‘파우치 앵커’ 혹은 ‘쪼만한 백’으로 불린다. 올 2월 윤석열 대통령과의 단독 대담 방송에서 디올백 사태에 대해 “이른바 파우치, 외국 회사 그 뭐 쪼만한 백이죠”라고 말해 사안을 축소하려 했다는 비난을 받은 뒤부터다. ‘파우치 앵커’는 23일 KBS 이사회에서 신임 사장 후보로 선임됐는데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면 기자로 입사한 지 30년 만에 12월 임기 3년의 사장 자리에 오른다.
▷처음엔 박민 현 사장이 유임될 것으로 점쳐졌다. 윤 대통령이 임명한 첫 공영방송 수장으로 어렵게 국회 인사청문회까지 거친 박 사장이 전임자의 잔여 임기 1년 1개월만 채우고 그만둘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박 사장이 취임 첫날 발탁한 ‘뉴스9’ 앵커가 박 사장을 제치고 최종 후보가 됐다. 24일 국감에서 야당 의원은 “대통령의 술친구 박민 사장이 김 여사 머슴을 자처한 박장범에게 밀린 것”이라고 했다.
▷KBS 이사회 면접에서도 디올백 질문이 나왔다. 박 후보자는 “사치품을 명품이라 부르는 것은 부적절” “제조사에서 붙인 이름(파우치)을 쓰는 것이 원칙” “파우치는 한국말로 ‘작은 가방’”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당시 대담을 떠올려보면 궁색한 변명 같다. 박 후보자는 ‘명품백 수수 논란’이라 하지 않고 “방문자가 김건희 여사를 만나서 앞에 놓고 가는”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4월 총선 최대 악재인 명품백에 대해 처음 공식 입장을 밝히는 자리였지만 질문이 뭉툭해서인지 대통령은 사과하지 않았다. 18개월간 공식 회견을 거부하던 대통령의 녹화 대담을, 그것도 녹화 3일 후 내보내는 방식을 수용한 것 자체가 공영방송의 흑역사로 남을 일이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KBS 이사회가 임명 제청권을 행사하면서 이른바 ‘민선 사장’ 시대가 열렸다. 한동안 명망가들이 사장에 임명돼 공영방송으로서 제자리를 잡아가나 싶었지만 2000년대 초중반부터 정치색 짙은 인물이 사장이 돼 정권 바뀔 때마다 새 사장이 전임자 시절 ‘용비어천가’를 반성하는 게 관례가 됐다. 박 사장도 첫 공식 행보로 대국민 사과를 했는데 그 후로도 KBS 시청자위원회에서 ‘뉴스9가 땡윤뉴스라는 조롱을 많이 받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장 선임 표결을 거부한 KBS 야권 추천 이사들은 “박 후보자 선출은 원천 무효”라며 소송을 예고했다. 표결에 참여한 여권 추천 이사들이 최근 위법 판결을 받은 방송통신위원회 ‘2인 체제’ 의결로 임명됐으니 이사들 임명부터 무효라는 주장이다. 소송에서 이기고 인사청문회 마치고 사장이 돼도 웬만한 공적을 남기지 않으면 그저 ‘쪼만한 백’ 덕에 큰 감투 쓴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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