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특검 거부 명분 내세울 최소한 조치조차
거부한 채 민심 정반대 길 고집함에 따라
여권내 “보수 공멸 막으려면 특검 위험해도
‘김건희 블랙홀’ 벗어날 변곡점 필요” 인식 확산
결국은 이 지경까지 왔다. ‘김건희 특검’을 피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헌법과 법치주의를 모독하는 편향된 내용의 야당 특검법이 대통령 거부권의 장벽을 넘어서는 장면이 머잖아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헌정사에 상처가 될 이런 상황을 초래한 주된 책임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다.
김 여사 문제에 대한 그의 인식을 보여주는 발언들이 한동훈 대표와의 면담 다음 날 부산 범어사 방문에서 나왔다. “업보로 생각하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겠다”,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 업보는 현 상태에선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쩔수 없는 운명적 굴레다. 그런데 김 여사 사태는 대통령 본인의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 극복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이를 업보라 여기는 건, 비유하자면 사탕과 과자를 끊지 못해 초고도 비만 위기에 처했는데 그걸 끊을 생각은 않고 비만은 나의 업보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국민을 위해 좌고우면 않겠다”는데, 지금 향하는 길은 후보 윤석열을 지지했고 지금도 윤 정권이 정상궤도로 복귀해 성공하길 염원하는 수많은 국민의 뜻과 정반대 방향이다.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는 건 나라를 위해 옳은 길을 가는 과정에서 세상의 오해로 비난을 받아도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다질 때 하는 말인데, 자기 아내의 비리 의혹을 감싸는 일에 국민과 대의명분이 끼어들 자리가 어디 있는가. 지금 대통령 부부에게 쏟아지는 건 우중(愚衆)의 돌팔매가 아니라 공정과 상식을 회복시키라는 정당한 요구다. 윤 대통령이 이런 착각에 빠진 것은 두 가지 요인 때문이다.
첫째, 좌파의 선동과 민의를 혼동한다. 윤 대통령은 김건희 논란이 선동과 가짜뉴스 탓이며, 여기에 보수진영과 여당 일부까지 휩쓸려 부화뇌동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 광풍(狂風)에 김 여사가 희생양이 됐는데 사내 대장부가 나 하나 살자고 아내를 마녀사냥의 제물로 던져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김 여사를 향한 비난에 좌파의 가짜뉴스와 선동, 편견이 섞여 있음은 분명하다. 그게 90%쯤 차지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머지 10%의 진짜 허물을 감싸고 법치의 예외 특권지대에 두려다 90%의 선동과 뒤섞이게 만든 게 대통령 본인이다.
필자는 민심은 과학이라고 본다. 이는 민심이 항상 100% 옳다는 뜻이 아니다. 민심은 선동과 가짜뉴스에 휩쓸려 광풍이 될 수 있다. 산사태가 쏟아질 때 그 흙탕물엔 온갖 가짜뉴스 선동 괴담이 뒤섞인다. 이 단계에서 광풍을 민심으로 오독(誤讀)하면 억울한 희생양을 양산한다. 괴담에 휩쓸린 군중의 광란이 역사를 그릇된 방향으로 이끈 사례들을 우리는 수없이 목도했다.
그러나 민심의 강물이 본류에 이르면 오물은 걸러지고 투명해진다. 숙려 과정을 거친 단계의 민심은 진실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김 여사 논란은 시작된 지 2년 반이 지났다. 그동안 여러 녹취들이 터져나왔고, 항소법원 판단도 나왔다. “아내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던 대국민 약속과 달리 공동정권 주인인 양 행세한 단초들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아내를 사법 절차의 심판대에 서게 하는 건 희생양으로 내놓는 게 아니라, 특권의 갑옷을 벗고 검사 부인, 대통령 부인이 아니었다면 누구나 거쳤을 절차를 거치게 하는 것일 뿐이다.
윤 대통령이 민심과 괴리된 착각을 하게 된 또 하나의 요인은 버럭 성미다. 여사 문제에 대해 쓴소리를 하면 호통 벼락이 떨어지니 바른 소리의 씨가 마르고, 구미에 맞는 얘기를 해주는 유튜브만 보니 여론과 동떨어지게 된 것이다.
만인환시리라는 걸 개의치 않은 채 감정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잦은 것도 옆에서 만류해 줄 참모의 부재 때문이다.
한 대표에겐 “우리 의원들이 야당 편에 서면 나도 어쩔 수 없다”며 담대함을 보여놓고 돌아서선 바로 원내대표를 불렀다. 이중적인 속내가 드러나는 그런 장면은 목도하기조차 민망할 지경인데도 정작 본인은 투명 유리병 바깥에서 지켜보는 국민의 시선을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한 대표도 정치력이 부족했다. 여당 대표가 대통령의 고집을 꺾어 설득하는 건 토끼 간을 빼오듯 고도의 정치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한 대표가 요구한 사항들은 옳았지만, 여당 대표라면 언론이나 야당과는 전달 방식이 달랐어야 했다.
윤 대통령의 극적인 인식전환이 없는 한 특검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김건희 이슈를 거부권에 의지해 계속 덮어 둔다는 것은 보수 전체의 공멸을 의미한다는 인식이 여권 내에 계속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특검은 보수진영 전체에 커다란 질곡이 될 것이다. 특검의 칼날이 광란하듯 춤추며 밑바닥의 잔재물까지 다 들춰내다보면 탄핵 세력에 악용될 사안들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여사 특검을 피할 수 없는 이유는 여사 문제를 이대로 덮어두면 남은 임기 동안 대통령의 리더십 관리에 치명적 걸림돌이 돼 국정 운영의 동력을 소진케 하고 보수정권 재창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검이 시작되면 보수의 초가삼간이 흔들리겠지만 그래도 김 여사 블랙홀에서 빠져나오려면 청산 변곡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최선의 길은 윤 대통령 스스로 팔을 잘라내는 결단을 내리는 것이었지만 정반대 방향으로 내달았으니 타의에 의해서라도 도려내야 한다. 회복은 지난한 과정일 수도 있지만 그게 두려워 수술을 기피해서는 안된다. 아직 임기가 절반 남았으므로 특검 광풍이 지난 뒤 국정동력을 되찾을 시간이 있다.
공정하고 중립적인 특검이 되게 하려면 윤 대통령이 “합리적인 안이라면 받으라”고 한 대표에게 프리핸드를 줘야 한다. 그래야 여당이 혼연일체가 돼 특검법안 내용을 놓고 야당과 줄다리기를 벌일 수 있다.
지금 상태에선 한 대표가 특검 내용을 갖고 야당과 협상에 나섰다가는 친윤의 반발로 당이 깨지는 위험을 안아야 한다. 야당도 분열된 여권의 속사정을 알기에 자기들 뜻대로 밀어붙일 것이다. 그러다보면 결국 야당 원안이 여권 이탈표를 업고 통과될 공산이 큰데, 이는 헌정사와 법치주의, 대통령 부부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보수정권 재창출이라는 밥그릇을 엎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그러려면 윤 대통령이 하루빨리 귀를 열고 민심을 들어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