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소릴까. ‘꿈과 희망의 나라’ 디즈니랜드도 아니고. 창고형 할인매장인 코스트코가 고객에게 환상을 선사한다니. 가본 이들은 알지만, 백화점 같은 세련미와는 동떨어진 꾸밈새를 떠올리면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이를 이해하려면, 40년 전인 1984년 미국 알래스카주에서 개장했던 코스트코 매장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1983년 창업한 코스트코는 이듬해 앵커리지에서 자신들의 ‘나아갈 길’을 발견한다. 혹독한 추위 속에 몇 시간씩 운전해야 식료품 가게를 찾을 수 있던 주민들에게 화려한 장식이 뭔 소용이겠나. 몇 달을 두고 먹을 거대한 양(mammoth quantities)의 땅콩버터와 토마토소스가 필요할 뿐. 픽업트럭 가득히 짐을 싣고 돌아가며 ‘이제 한동안 걱정 없이 살겠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하는 것. 그게 코스트코가 주는 환상이자 착시다.
NYT에 따르면 코스트코의 이런 이미지는 팬데믹 때 더 큰 힘을 발휘했다. 전무후무한 비접촉의 시대. 집 앞까지 배달하는 온라인 쇼핑몰이 가장 큰 이득을 챙겼지만, 코스트코도 만만치 않았다. 어떤 일이 닥칠지 몰라 주방 가득 생필품을 채워 둬야 하는 이들에게 코스트코는 머리에 “첫 번째 선택지”처럼 떠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트 나들이는 배달로 충족시킬 수 없는, 콧바람을 쐴 기회로 여겨진 것도 장점이었다.
코스트코가 소비자에게 심은 환상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미 경제지 포브스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합리적(reasonable) 소비자’란 만족감을 얻는다”고 했다. 단지 저렴하게 구매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10만 원 쓰겠다고 왔다가 20만 원을 썼더라도, 여기서 사면 과소비가 아니란 ‘인식(psyche)’을 갖는 게 중요하다. 미 브랜드 컨설턴트 제러미 스미스는 “코스트코의 상술은 사람을 홀리는 마법 같은 게 아니다”라며 “소비자와 기업이 가치를 공유한다고 믿는 문화를 형성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해 미 코스트코에서 가장 빠른 판매율을 올린 상품은 1온스(약 31.1g) ‘금괴(gold bar)’였다. 생필품도 아닌데 이토록 인기가 많았던 건 ‘코스트코에선 금괴도 합리적으로 판다’는 믿음 덕이었다. 당시 금값이 오른단 보도가 이어졌지만, 막상 일반인들은 어떻게 금에 투자할지 모르는 경우가 상당하다. 하지만 코스트코에선 편하게 장 보듯, 좋은 조건으로 금을 살 수 있단 기대가 소비를 부추겼다.
코스트코도 이제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 8월 기준 세계 15개국 890개 매장을 가진 코스트코는 올해 아마존, 월마트에 이어 글로벌 3위의 유통업체로 올라섰다. NYT는 “메이저 빅3로 자리를 굳힐지 갈림길에 섰다”고 평했다. 특히 코스트코 영업이익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회원비를 지난달에 올리며, 견고했던 고객 충성도(loyalty)가 시험대에 올랐단 평가가 나온다. 최근 한국에서 논란이 됐듯 ‘해외에선 미국과 달리 현지와의 상생을 외면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점 등은 개선이 필요하다.
세계 유통업계가 경기 불황으로 비명을 지르는 지금, 코스트코는 앞으로도 고객들에게 환상을 안겨줄까. 코스트코가 1985년 선보인 핫도그 세트는 지금도 가격이 1.5달러(한국에선 2000원) 그대로다. 신뢰는 깨어지기 쉽다. 하지만 지켜낼수록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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