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50여 개. 올해 5월부터 북한이 한국에 날려 보낸 풍선 수다. 북한이 대남 전단이 담긴 풍선을 한창 보낸 2016년과 2017년 한 해 동안 날린 풍선이 약 1000개씩이다. 5개월 만에 그 수를 6배 이상 넘겼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최근 오물풍선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군에 촉구했다고 한다. 풍선이 터지도록 발열 타이머와 화약을 부착한 탓에 화재 발생이 되풀이되는 게 오 시장의 우려를 키웠다. 북한산이나 남산에 떨어져 대형 산불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나.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마땅한 방법이 없어 ‘떨어진 풍선을 빨리 수거하는 게 최선’이라는 군의 태도는 무대응에 가깝다. 많은 시민들의 일상이 위험에 노출된 채 시간이 흘러간다. 그러다 큰불이라도 나고 사람이 죽고 난 뒤 “단호한 군사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건 파국을 바라는 것처럼 들린다.
모래에 머리 파묻은 타조 같은 용산
그러는 사이 북한은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삐라 풍선을 보냈다. 삐라는 윤 대통령이 외국 정상을 맞는 국빈 환영식 행사장에 떨어졌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대통령실을 조준했을 것이다. 오물풍선이 올 때마다 군은 “안전에 위해되는 물질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시민의 생명을 위협할 물질로 타깃을 노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타조 효과다. 타조는 맹수를 만나면 모래에 머리를 파묻는다. 위기가 닥치고 있는데도 문제를 모른 체하고 방치한다.
‘김건희 리스크’에 대한 윤 대통령의 대응도 비슷하다. 4월 총선 전부터 김 여사의 디올백 수수 논란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당에서 터져나왔지만 1월 “박절하지 못했다”는 말로 피했다. 총선 참패 한 달 뒤 뒤늦게 사과했지만 이후 각종 의혹이 고구마줄기처럼 이어지고 있다. 김 여사가 직접 국민 앞에 사과하고 속시원히 설명해야 한다는 여당 내 요구가 뭍밑에서 대통령실에 전달됐다고 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결심하지 못했고 지금까지 왔다.
한 여권 인사는 “대통령의 위기는 외부 폭발(explosion)이 아니라 내파(implosion)에서 왔다. 그래서 더 심각하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이명박 전 대통령 국정 지지율을 곤두박질치게 만든 광우병 파동은 원인이 외부 충격에서 온 ‘explosion’에 가깝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지지율 바닥은 ‘김건희 리스크’를 윤 대통령 스스로 오랜 시간 방치한 내부 모순이 만든 ‘implosion’이다. 타조가 모래에 머리를 파묻듯이 말이다.
변화와 쇄신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명태균 리스크’도 마찬가지다. 김 여사가 명 씨와 어떤 대화를 나눴고 그중 무엇이 문제 될 만한지 정확히 아는 대통령실 참모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조사해 보자고 윤 대통령에게 얘기할 참모도 없을 것 같다.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의 면담에서 “나와 달리 명 씨를 달래고 좋게 선거를 치르려 했다”고 말했다는데, 김 여사가 왜 명 씨를 달래려 했는지 설명은 없다. ‘김건희 라인’을 정리하라는 한 대표의 인적 쇄신 요구에 윤 대통령은 “그 사람들이 무슨 잘못을 했나”라는 태도다.
윤 대통령을 잘 아는 인사는 “윤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얻어맞고 나서야 방향을 바꾸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인적 쇄신은 구체적인 잘못이 있을 때뿐 아니라 민심이 요구할 때, 변화가 필요할 때 하는 것이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지금 방향을 바꿔야 한다. 파국을 원하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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