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직자 주식백지신탁 ‘소송으로 무력화’ 꼼수 막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0월 25일 23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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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 주식 매각 의무가 있는 고위 공직자들이 해당 주식과 본인의 직무 관련성을 따져 보겠다며 심사를 청구하는 사례가 최근 몇 년 새 두 배로 늘었다. 심사 결과에 불복해 행정심판이나 소송을 내는 경우도 많아졌다. 공직자윤리법상 3000만 원이 넘는 주식을 보유한 고위 공직자는 두 달 내에 주식을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해야 하는데 주식을 내놓지 않고 버티는 것이다. 공직 수행 중 이해 충돌을 막기 위한 백지신탁 제도가 시간 끌기식 소송으로 무력화되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이 인사혁신처, 국민권익위원회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인사처 주식백지신탁 심사위원회에서 직무 관련성을 심사한 사례는 809건으로, 2015년 356건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올해 들어 8월까지도 506건에 이른다. 주식을 백지신탁하라는 심사위 결정에 불복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2005년 이후 국민권익위원회에 청구된 행정심판 중 57.1%가 최근 2년 새 이뤄졌다.

제도의 허점을 이용하는 이들은 불복 심판·소송 진행 기간에는 백지신탁 의무 집행이 정지된다는 것을 악용해 거듭 이의를 제기해 시간을 번다. 심사위에서 직무 관련성이 있다고 나오면 이에 불복해 행정심판을 청구하고, 행정심판에서 기각되면 행정소송에 들어간다. 최근 2심 소송에서 패소하자 물러난 문헌일 서울 구로구청장은 주식을 팔지 않고도 4년 임기의 절반 이상을 채웠다. 그사이 본인 주식은 49억 원이나 불어났고 구민들에겐 내년 치러질 보궐선거 비용을 빚으로 남겼다. 현 정부 들어 박성근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과 유병호 전 감사원 사무총장도 백지신탁에 반발해 소송으로 버티며 오랜 기간 자리를 지켰다. 재직 기간이 1∼2년 정도인 정무직 공무원들은 주식을 그대로 가진 채 임기를 마칠 수도 있다.

현행 주식백지신탁 제도가 기업인 등 유능한 인재의 공직 진입을 막는 부작용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공직자가 업무 과정에서 공익보다 사익을 앞세우지 않도록 이해 상충을 해소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심사위의 결정에 불복 절차를 밟는 동안은 이해 충돌 가능성이 있는 직무에 관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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