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종대 ‘여민락’이라는 악곡이 있었다. 이는 연원이 있는데, 맹자의 ‘백성들과 함께 사는 삶’에서 나왔다. 제나라 선왕(宣王)은 ‘무력 자랑을 좋아한다’, ‘재물을 좋아한다’, ‘여자를 좋아한다’고 고백하며 맹자에게 자문을 했는데, 그에 대해 맹자는 ‘백성들과 함께한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나’라고 대답했다. 제 선왕의 고백에 맹자는 욕망의 부정이 아니라 방향 전환을 통해 새로운 비전을 열어 보였다.
맹자는 말한다. “내가 처음 제나라 국경에 도착하여 가장 금지하는 게 뭔지 물어보았다. 사람들이 말하길, 서울에 사방 40리 동산이 있는데, 그곳 짐승을 잡는 자는 사람을 죽인 죄와 같이 다스린다고 했다. 사방 40리 되는 함정을 나라 한가운데에 만들어 놓았으니, 백성들이 너무 크다고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맹자 ‘양혜왕 하(梁惠王下)’)
백성들은 대지, 즉 논밭, 숲, 강, 바다 등에서 생산물을 얻어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래서 사유지를 제외한 숲 등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개방되어 생계 수단을 얻을 수 있었다. 공유지(commons)였던 것이다. 소나무·참나무 같은 목재, 꿩·토끼 같은 동물, 딸기·버섯 같은 식물…. 이곳은 또한 나들이와 놀이의 공간이었다. 로빈후드의 셔우드 숲을 상기하면 이해하기 쉽다.
전국시대 군주들은 이 공유지를 독점하였다. 이제 공유지의 사용, 수익, 처분을 놓고 긴 투쟁이 벌어질 터였다. 국가 정책의 강제성에 따라 백성들은 세금을 내든지, 아예 뒤엎든지 할 것이다. 바다나 갯벌, 숲과 하천에 철도나 공항을 놓고 이를 정부 마음대로 처분, 사유화할 수 있다는 생각의 폭력성은 ‘효율화’, ‘경영 합리화’라는 미명 아래 가려진다. 인류의 오랜 역사는 공적 자원의 사유화는 비효율과 공동체의 불안을 낳는다고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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