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30조 원 규모의 세수 펑크를 메우기 위해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 주택도시기금, 공공자금관리기금 등에서 최대 16조 원을 끌어다 쓰기로 했다. 2년 연속 대규모 세수 결손이 현실화되자 정부 기금을 총동원해 ‘돌려막기’에 나선 것이다. 세수 기반을 확충하거나 재정 지출 누수를 막는 정공법 대신 꼼수를 동원해 세수 부족을 충당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세수 부족에 대응해 투입하는 공공기금 가운데 외평기금이 최대 6조 원으로 가장 많다. 작년에도 세수 결손을 메우는 과정에서 환율 급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쌓아둔 외평기금에서 20조 원을 끌어 썼는데 또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특히 기재부는 지난달만 해도 외평기금을 추가 동원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가 말을 바꿨다. 정부는 외평기금 규모가 270조 원이 넘어 세수 부족분을 메워도 외환시장 대응 여력이 충분한 데다 지방교부세 삭감을 최소화하려는 조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세계 경제의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외환 방파제’인 외평기금에 손대는 것은 정책의 우선순위를 망각한 발상으로 나쁜 선례를 만들 수 있다.
정부는 청약저축·국민주택채권 등으로 조성한 주택도시기금에서도 최대 3조 원을 동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무주택 서민을 위한 임대주택 건설 등 주거복지 사업에 쓰이는 기금을 세수 펑크 대응에 활용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다. 더군다나 청약통장 가입자의 이탈로 주택도시기금 여유 자금 감소까지 우려되고 있다.
세수가 부족하면 국채 발행을 통해 추경을 편성하거나 세입 확충 방안을 내놔야 하지만 건전재정을 앞세운 정부는 이번에도 추경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래 놓고 꺼내든 게 기금 돌려막기라는 땜질식 대책이다. 정부가 올 들어 한은에서 빌려 쓴 급전도 152조 원이 넘는다. 이쯤 되면 ‘돌려막기 중독’ ‘마통 중독’이라 할 만하다.
연말이면 1200조 원에 육박하는 나랏빚을 감안해 적자 국채 발행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이라곤 하지만, 돌려막기가 일상이 되고 급전을 끌어다 나라살림을 꾸리는 건 재정 운영의 투명성과 위기 대응 능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변칙과 편법 대신 정공법으로 세수 구멍을 메우고 경기 침체에 대응할 ‘재정 실탄’을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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