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왜 디지털 교과서의 실험 대상이 돼야 하는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디지털 과몰입 세대인데 교과서마저 태블릿PC로 본다니….”
내년으로 예정된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앞두고 학부모 사이에서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학부모 상당수는 가뜩이나 아이들의 ‘스마트폰 중독’이 심각한 상황에서 교과서마저 디지털 기기로 바뀌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AI 교과서가 학생들의 집중력과 문해력을 저하시키고 학습 효과를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아직 세계적으로 교과서에 AI 디지털 교과서를 전면 도입한 나라가 없다는 점도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키우는 요소다.
국회에는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유보해 달라는 국민동의청원까지 등장해 한 달 만에 5만6505명의 동의를 받고 교육위원회에 넘겨졌다.
교육 현장에서도 반발이 상당하다. 전국 시도교육감 17명 중 9명이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에 ‘신중 의견’을 밝혔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도 최근 교육부에 재정 부담과 개인정보 침해 등의 이유를 들며 “AI 디지털 교과서의 개선 및 보완 사항을 점검한 후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등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냈다.
AI 디지털 교과서는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역점 사업이다. 내년 3월부터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수학·영어·정보·국어 과목에 AI 디지털 교과서가 우선 적용된다. 학교에선 내년에 AI 디지털 교과서를 접하는 세대를 ‘이해찬 1세대’에 빗대 ‘이주호 1세대’라고도 부른다. 당초 교육부는 2026년부터 국어·과학·사회·역사 등 다른 주요 교과에도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할 계획이었지만 여론의 거센 압박에 최근 2026년 도입 과목에 대해선 ‘속도 조절을 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생각해 보면 교육부는 거센 반대 여론이 한편으론 고맙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당장 교육 현장에는 초고속 인터넷망 등 기본 설비도 갖춰지지 않았다. 내년 3월에 도입되는 AI 교과서 영어·수학·정보 출판사는 검인정을 통해 다음 달 말에야 결정되고, 테스트 기간은 단 3개월에 불과하다. 이는 졸속 도입이란 비판이 제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교육 선진국으로 불리는 스웨덴은 2017년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했다가 지난해 폐지했다. 지나치게 디지털화된 학습 방식 때문에 학습 능력과 문해력이 저하됐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초등학교 4학년 읽기 능력을 평가하는 ‘국제읽기문해력연구(PIRLS)’에 따르면 스웨덴 학생들의 평균 점수는 2016년 555점에서 2021년 544점으로 11점 떨어졌다.
한국의 교육 현실은 어떨까. 최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교사 5848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학생 문해력이 과거에 비해 저하됐다”는 답변이 91.8%에 달했다. 교사가 ‘사건의 시발점(始發點)’을 말하니 “교사가 왜 욕을 하냐”는 반응이 돌아오고, ‘족보가 뭐냐’는 질문에는 “족발 보쌈 세트”란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이를 보면 한국 역시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 과정에서 문해력 저하 우려에 대한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다.
교과서는 공교육의 근간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졸속 논란을 감안해 충분한 검토와 보완을 거쳐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야 한다. 급하게 추진해 실패한 교육 정책은 학생들의 미래를 두고두고 발목 잡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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