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좌고우면하지 않고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고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빈손’ 회동 다음 날 나온 발언이어서 김건희 여사 관련 논란에 대해 지금처럼 그대로 가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흔들림 없이 개혁 과제를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했다. 대통령실 설명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지금껏 정부가 구조개혁을 추진해 온 과정을 보면 “돌 맞아도 간다”는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윤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줄곧 연금, 의료, 교육, 노동의 4대 개혁을 강조해 왔다. 발언 빈도만 보면 4대 개혁 전도사라 부를 만하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저항이 있더라도” “선거에서 지더라도”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발언은 자못 비장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임기 반환점을 앞둔 지금까지 손에 잡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구체적인 실행 전략 없이 구조개혁의 당위성만 설파하는 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양보-뚝심-소통 없는 말뿐인 구조개혁
“돌 맞아도 간다”는 건 손해를 감수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 정부의 개혁에선 정치적 희생과 양보가 보이지 않는다. 선거에 지더라도 재정 건전성을 지키겠다고 했지만 올해 4월 총선을 앞두고 다급해지자 20여 차례 민생토론회를 통해 수십 조원의 선심성 약속을 쏟아냈다.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주 69시간’ 프레임에 걸려 여론이 안 좋아지자 황급히 거둬들였다. 취임 초엔 시급한 구조개혁을 위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전시 연합 내각 모델까지 거론하더니 야당과의 타협과 협치에는 아예 손을 놓아버렸다.
“돌 맞아도 간다”는 건 뚝심 있게 추진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 정부는 각종 정책에서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 부동산·가계대출 정책이 대표적이다. 대출은 조였다 풀었다 반복했고, 이자는 시장 상황과 반대로 올려라 내려라 했다. 고금리의 유리한 환경 속에서 집값과 가계부채를 잡기는커녕 들쑤셔 놓기만 했다. ‘샤워실의 바보’ 같은 정책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정부가 장기 개혁 과제를 흔들림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국민들이 믿기는 어렵다.
물론 흔들림 없이 추진하는 개혁도 있다. 의료개혁이다. 하지만 뚝심이라기보다는 아집에 가까웠다. 의료개혁은 공감대가 컸고 여론도 우호적이었지만 ‘의대 증원 2000명’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느라 고립을 자초했다. 처음엔 반대가 크더라도 소통과 설득을 통해 접점을 넓혀가는 게 개혁의 과정인데 정반대로 진행됐다. 비판과 저항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개혁을 하고 있다. 밀리면 안 된다”고 착각하는 듯하다. 돌을 맞는 것은 개혁의 과정이지 목표가 아니다.
IMF “개혁 성공의 요체는 정치 신뢰”
국제통화기금(IMF)은 22일 내놓은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1996∼2023년 76개국의 상품·노동시장 개혁 사례를 분석해 개혁 성공의 조건을 추렸다. 결론은 정부와 제도에 대한 신뢰, 소통, 그리고 참여가 핵심이었다. 변화의 필요성과 정책 효과에 대해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정책 설계 초기부터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보장하며, 구조개혁의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한 대책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29일 국무회의에서 “구조개혁 없이는 민생도 없고 국가의 미래도 없다”며 연내에 4대 개혁 과제의 성과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의만 말고 대통령령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부터 빠르게 바꾸라”고 다그쳤다. 하지만 구조개혁은 자판기에서 물건 뽑듯 뚝딱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구조개혁의 추진 동력을 높이려면 우선 정치적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부터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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