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1월 4일로 예정된 2025년도 예산안 국회 시정(施政) 연설을 직접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닷새 앞인데도 “정해진 게 없다”는 말 외에는 설명이 없다. 불참이 확정되면 2025년 국정 방향과 677조 원 규모 예산안에 대한 설명을 한덕수 국무총리의 대독 형식으로 듣게 된다. 2013년 이후 11년 동안 쌓아온 대통령의 시정 연설이라는 전통이 깨진다는 의미다.
1987년 개헌으로 도입된 시정 연설은 국회의 새해 예산안 심의에 앞서 대통령이 직접 정부의 예산안 내용을 설명하며 국회의 협조를 구하는 자리다. 임기 첫해만 대통령이 할 때도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 이후 대통령이 직접 매년 국회를 찾는 관행이 정착됐고, 윤 대통령도 작년과 재작년 두 차례 연속 국회를 찾았다.
대통령실 주변에선 시정 연설 불참 가능성의 이유로 야당의 피켓시위나 탄핵 구호 가능성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를 대통령의 국회 연설 관행을 건너뛰는 구실로 삼아선 곤란하다. 올해 못잖게 여야 다툼이 극심했던 작년에도 여야는 신사협정을 맺어 본회의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고, 연설 후에는 대통령과 국회의장, 여야 원내대표가 오찬까지 함께 했다.
내년 한 해 국정과 예산안 설명만으로도 대통령이 국민에게 직접 보고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게다가 지금은 북-러 군사협력, 의료대란 등 중대 현안이 여럿 있다. 이에 대한 정부 입장을 설명하고, 반대 여론이 있다면 진솔하게 설득하는 게 대통령의 책무다. 국민들도 국정 현안에 대한 대통령 생각을 직접 들을 권리가 있다.
윤 대통령은 9월 초 22대 국회의 개원식에도 불참했는데, 대통령의 개원식 불참은 87년 체제에서 초유의 일이었다. 당시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은 “국회가 정상화하기 전에는 가시라 못 한다”고 해명했다가 논란을 빚었다. 국회가 달라져야 하지만, 대통령은 어떤 상황이든 국회 협조를 구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야당도 국가원수 모독 행위를 자제하는 등 예의를 지켜야 한다. 대통령이 국회를 찾고, 국회의장과 여야 지도부를 만나고, 국민에게 손을 건네는 일은 어느 정권이든 지속돼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