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기당 한 번쯤 보는 젊은 남자 친구들이 있다. 한 명은 30대 초반, 한 명은 20대 후반. 만나면 즐거우니 이들을 보면 늘 오래 많이 마셨다. 지난주엔 달랐다. 술을 좋아하던 30대 초반 친구가 앉자마자 건강 때문에 당분간 술을 못 마신다고 했다. 술 없는 그날 저녁은 다른 날과 아무 차이가 없었다. 2차로 커피를 마셨고, 밤까지 문 연 커피숍이 없어서 패스트푸드점에 갔을 뿐이었다.
지난주에는 이 친구들 말고도 남자들과의 저녁 약속이 많았다. 각자 대기업에 다니는 중간관리자급 친구들이었다. 나를 비롯해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이면 사회생활 때문에라도 한창 마시던 나이라고 여겨졌다. 이제는 아니었다. 각각의 자리에서도 역시 거의 마시지 않았다. 한 자리에서 맥주 한 잔 정도. 숙취해소제를 미리 마실 필요도, 시간이 늦어 택시 잡을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다. 가벼운 몸으로 타고 가던 밤 지하철에도 만취한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취할 정도로 마신 게 언제였나 싶다. 오랜 친구 중에는 소주 한 병을 시키며 식사를 시작하는 친구도 많았다. 요즘은 그런 자리가 없다. 2차 커피도 놀랍지 않다. 작년에 만난 어느 미국 대학 남자 교수는 “모임에서 와인을 석 잔쯤 마시면 주변에서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본다”고 미국 분위기를 전했다. 1800년대를 그린 1936년 작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는 미국 남부 남자의 미덕 중 하나가 술 잘 마시기라고 쓰여 있었다. 그런 세상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중이다.
우연히 내 주변 사람들만 술을 줄였나 싶어 통계를 찾아보았다. 질병관리청 국민건강영양조사 내 ‘월간폭음률’ 항목을 보면 19∼39세 남성 월간폭음률은 꾸준한 감소 추세다. 40대 남성은 코로나가 끝난 2022년의 월간폭음률이 2021년의 51.1%에서 57%로 폭등하는 반면 20대와 30대의 월간폭음률은 코로나와 관계없이 지속 하락하고 있다. 2023년 수치가 나오면 더 확실한 추세를 알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 피부로 느끼기엔 남자들은 확실히 덜 마시고 있다.
반면 주류시장 규모는 커진다. 국세청 주세 데이터로 추산한 한국 주류업계 출고 금액은 2023년 9조7000억 원,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대 규모라고 한다. 두 가지 변수를 상상해 본다. 일단 비싼 술이 늘었다. 여전히 과음하는 친구들이 그 근거다. 이제 그들은 미식형 폭주를 한다. 좋은 음식에 좋은 술을 곁들인다. 주류시장 트렌드 역시 다양화다. 값싼 소주보다 비싼 술이 다양해지고 많아졌다는 의미다. 또 하나는 여성 음주다. 남성 음주율과 달리 여성 음주율은 견고한 증가세다. 월간폭음률 추세를 보면 20대 여성과 30대 여성의 월간폭음률이 매년 높아지고 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무렵 내가 잡지 에디터라는 직업을 택한 이유 중에는 이 직군의 낮은 음주율도 있었다. 친구들이 지원하던 기업의 사무직이나 영업직 등은 모두 술을 많이 마신다고들 했는데 나는 예나 지금이나 원치 않는 술자리가 싫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세상은 확실히 변했다. 술과 사회생활의 연관성이 점점 줄어든다. 안 마시는 남자들의 세상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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