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전국 땅꺼짐 사고 1127건
노후 상하수도관-기후위기 등 원인
땅 속에 전자기파 쏴 빈 공간 확인
더 깊은 지하엔 탄성파 활용해 예측
지난달 4일 인천 부평구의 한 도로에서 25t 화물차가 땅에 빠졌습니다. 도로에 가로 3m, 세로 1m 규모의 구멍이 생기면서 트럭 뒷바퀴 3개가 걸렸고 주변 교통이 통제됐습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올 8월 29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도로에서 땅꺼짐 사고로 2명이 중상을 입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한 것이어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시민이 적지 않았습니다. 최근 수도권 등에서 ‘싱크홀’로 불리는 땅꺼짐(지반 침몰) 사고가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5년간 전국 1127곳 땅꺼짐 사고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8∼2022년 전국에서 땅꺼짐 사고는 총 1127건 발생했습니다. 해마다 평균 225건, 이틀에 한 번 이상 땅꺼짐 사고가 일어난 것입니다. 땅꺼짐은 지하에 빈 공간이 생기면서 땅이 내려앉는 현상을 말합니다.
지하 공간은 흙과 돌, 지하수로 채워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보통 지하수는 흙을 이루는 알갱이 사이의 틈으로 서서히 흐릅니다. 그런데 지하수가 갑자기 빨리 흐르거나 양이 많아질 경우 물이 흙을 씻어내며 빈 공간이 생길 수 있습니다. 빈 공간이 점점 커지다 보면 그 위에 있던 땅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꺼지면서 땅꺼짐 사고가 발생합니다.
서울시는 8월 29일 연희동에서 일어난 사고는 지형적 특성, 지하 시설물, 주변 공사 등 여러 이유가 결합돼 발생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먼저 사고 지점은 궁동산과 경의선 철도 사이 경사지에 있어 지하수가 빨리 흐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하수가 빠르게 흐르면서 흙이 씻겨 나갔다는 것입니다. 또 사고 장소는 다른 곳에 있던 흙을 옮겨다 덮고 도로를 만든 매립지이기도 합니다. 그렇다 보니 오랜 시간에 걸쳐 단단하게 굳어진 땅보다 지반이 불안정했습니다.
서울시는 사고 지점 주변의 빗물펌프장 공사로 지하수가 유출됐을 가능성도 지적했습니다. 땅을 뚫고 파는 공사를 하는 동안 지하수가 공사장으로 흘러 들어오며 원래 흙이 있던 곳이 텅 비게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유충식 성균관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국내 대도시에서 일어나는 땅꺼짐 사고는 공사 등 인위적 원인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이라며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야 앞으로 일어날지 모를 땅꺼짐에 대비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 노후화된 상하수도가 주원인
국내에서 발생하는 땅꺼짐 사고 중 절반 이상은 노후화된 상하수도관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2018∼2022년 발생한 땅꺼짐 사고 1127건 중 하수도 손상에 의한 사고가 506건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하에 설치된 수도관이 깨지거나 금이 가면서 물이 샜다는 것입니다. 수도관이 깨진 틈 사이로 흙이 쏟아지거나, 수도관에서 흘러나온 물이 흙과 같이 다른 곳으로 쓸려 가면 수도관 위에 빈 공간이 생겨 땅이 가라앉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국내 대도시 지하에는 설치한 지 오래된 낡은 상하수도관이 많습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의 전체 상하수관 중 30년 이상 된 하수관로는 전체의 55.6%, 상수관로는 전체의 36%나 됩니다.
전문가들은 기후 위기로 더 강하게, 더 자주 찾아오는 극한 호우도 땅꺼짐에 영향을 준다고 지적합니다. 류동우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긴 장마와 홍수는 지하수 흐름에 변화를 일으키거나 흙의 특성에 영향을 미친다”며 “지반 함몰 역시 기후 위기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부실 공사도 땅꺼짐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건물의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해 땅을 깊게 팔 때는 주변 땅이 무너지지 않도록 벽을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 벽에 틈이 생기면 그 사이로 주변 흙과 지하수가 공사장으로 유출되면서 인근 땅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터널을 뚫을 때도 주변 흙과 지하수가 터널 내부로 들어오며 터널 위에 빈 공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빈 공간이 점점 커지거나 위로 이동해 지표면과 가까워지면 땅꺼짐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레이더 장치로 땅꺼짐 예방
그러면 땅꺼짐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땅꺼짐을 예방하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은 지표 투과 레이더(GPR) 탐사입니다. 전자기파 장치가 달린 자동차가 땅속으로 전자기파를 쏜 뒤 반사돼 돌아오는 정보를 통해 땅속에 빈 곳이 있는지 확인하는 방식입니다. 서울시는 2014년부터 정기적으로 GPR 탐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GPR 탐사만으로 모든 땅꺼짐을 예방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GPR이 사용하는 전자기파는 습기와 금속에 의해 쉽게 흡수돼 지하 2m까지만 도달하기 때문입니다. 지하 20∼30m가량 깊게 땅을 파고 뚫는 공사가 이뤄질 경우 주변에 생겨난 공간은 GPR 탐사로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땅속을 보다 면밀히 살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GPR보다 더 깊은 지하까지 도달할 수 있는 ‘탄성파’를 활용한 탐사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탄성파는 물이나 금속을 만나도 쉽게 흡수되지 않아 전자기파보다 지하로 더 깊게 전파됩니다. 지하철처럼 지하에서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물체를 통해 탄성파를 쏘면 이후 반사돼 돌아오는 탄성파 신호를 분석해 빈 공간이 있는지 조사할 수 있습니다.
유 교수는 2022년 인공위성이 관측한 영상을 이용해 땅이 가라앉는 속도를 측정하는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위성이 보낸 두 개 이상의 영상 자료를 비교해 땅의 높낮이를 분석하면 땅이 얼마나 빠르게 가라앉는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한 번에 넓은 지역을 살펴볼 수 있어 GPR 탐사보다 효율적이기도 합니다. 유 교수는 “땅꺼짐은 오랜 시간에 걸쳐 땅이 내려앉으며 생기는 문제”라며 “다른 곳보다 빠르게 가라앉는 지역을 땅꺼짐에 취약한 지역으로 보고 집중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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