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번 정기국회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상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이 힘을 실어온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동의하는 대신 ‘증시 선진화’를 위해 상법을 고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법 개정이 소송 남발로 이어져 민주당의 입법 취지와 반대로 기업 가치를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미 민주당 의원 10여 명은 현재 ‘회사’로 돼 있는 상법의 이사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 ‘총주주’ 등을 추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제출해 놨다. 정부와 여권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여러 차례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가 ‘경영 환경이 급속히 악화될 것’이란 경제계 반발에 부딪힌 뒤 뚜렷한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충실의무 대상을 총주주 등으로 확대할 경우 기업들이 외부의 공격에 취약해진다는 게 경제계의 우려다. 일부 지분을 확보한 투기적 행동주의 펀드가 이사회 결정을 문제 삼아 수시로 소송을 제기할 경우 심리적으로 위축된 이사들은 구조조정, 인수합병(M&A) 같은 중요 결정을 내리는 데 부담을 느끼게 된다. 기업들이 소액주주의 요구에 떠밀려 미래를 위한 투자 대신 단기 주가 부양을 위한 배당, 자사주 소각에 더 많은 자원을 쓰게 될 공산도 크다.
민주당은 주주가 특정 이사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도록 하는 ‘집중투표제’ 강화, 대주주가 정한 이사 외에 별도 감사위원을 두도록 의무화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확대도 추진하겠다고 한다. 선진국들과 달리 차등의결권 같은 방어 수단이 전무한 상태에서 이런 제도가 도입되면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에 과도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될 것이다.
국내외 헤지펀드들이 한국 대기업 지분을 사들인 뒤 이사회 구성 변경, 배당 확대를 요구하는 일이 급속히 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기업들은 미중 패권전쟁에 따른 무역질서 변화, 인공지능(AI)발 산업구조 재편 등 이례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정치권이 지원책을 내놔도 부족할 판에 기업 경영의 발을 묶는 입법을 추진하는 건 심각한 자충수가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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