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외교부가 한국인의 무비자 입국을 내년 말까지 허용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주중 한국대사관조차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전격적이었다. 무비자 입국은 통상 별도의 협정을 맺거나 상호주의 조치로 이뤄진다. 그런데 중국 정부는 한국과 별다른 협의 없이 ‘일방적 무비자 정책’을 당장 8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더욱이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이 간첩 혐의로 체포돼 양국 간에 냉기류가 흐르는 상황에 일어난 일이어서 해석이 분분하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양국의 인적 교류는 꾸준히 늘어나 2016년엔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의 절반 이상이 중국인이었고, 한국인이 방문한 해외 국가의 4분의 1가량이 중국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사드(THAAD) 배치를 빌미로 중국 정부가 한한령(限韓令)을 내린 데 이어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덮치면서 한중 간의 왕래는 끊기다시피 했다. 지난해 다소 회복됐지만 한국에 입국한 중국인, 중국을 찾은 한국인 모두 2019년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렀다.
▷현 정부 들어 양국의 외교 관계도 순탄치 않다. 대미 외교에 중점을 두는 한국 정부에 대해 중국의 불만이 커지면서 주한 중국대사가 “중국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에 날로 치열해지는 양국 간의 기술 경쟁도 갈등으로 번질 수 있는 요소다.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에서 일했던 삼성전자 출신 한국 교민이 반(反)간첩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것은 이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이를 놓고 국내에서 “이래서 중국을 못 믿는 것”, “중국 스파이 색출하자” 등의 목소리가 분출하는 시점에 나온 중국의 무비자 입국 허용 조치를 관광사업 활성화 차원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반중 정서 확산을 바라지 않는 중국 정부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외교가에선 최근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을 우려하는 중국에 한국은 매력적인 견제 카드가 될 것으로 본다. 미 대선 이후 중국에 대한 견제가 강화될 것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한시라도 빨리 한국과 거리를 좁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으로선 조변석개하는 중국의 태도가 미덥지 못한 게 사실이다. 국제정세가 바뀌면 중국이 언제 또 변덕을 부릴지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다만 이번엔 중국이 한국을 향해 손을 내민 만큼, 우리로서도 한동안 등한시했던 중국과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수는 있다. 한국 역시 북-러 밀착을 견제할 방안을 고민 중이고, 경기 회복을 위해서는 대중 수출을 활성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의 속내가 어떻든 이를 활용해 우리의 국익으로 연결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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