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희창]‘부자 감세’ 논란 자초한 정부… 의미 없는 ‘무늬만 건전 재정’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1월 5일 2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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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창 경제부 차장
박희창 경제부 차장
국회 심의를 앞둔 올해 세법 개정안이 처음 발표됐을 때부터 의아했던 건 세 부담 변화다. ‘부자들의 세금’으로 여겨지는 상속세 부담을 줄여주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도 정부가 고소득자보다 서민, 중산층의 세 부담이 더 크게 감소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고소득자의 세 부담은 1664억 원 줄어들지만 서민, 중산층은 6282억 원 감소한다고 추산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부자들을 감세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중산층 부담을 완화하는 차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최근 정반대인 추계가 나왔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올해 세법 개정에 따른 고소득자의 세 부담 감소 폭이 4조 원이 넘어 서민, 중산층 감소 폭의 13.5배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올해를 기준으로 앞으로 5년 동안의 세수 효과도 산출해봤더니 고소득자의 세 부담은 20조 원 넘게 줄었다. 서민, 중산층의 세 부담 감소 폭은 1조7000억 원에 불과했다.

엇갈린 추계는 상속·증여세 개정이 가져올 세수 효과를 분류한 방법에서 기인했다. 정부는 상속인들이 받을 감세 혜택을 분석이 곤란한 항목들을 모아둔 ‘기타’로 빼놓고 계산했다. 반면 예정처는 해당 효과가 고소득자에게 돌아갈 것으로 봤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정부가 ‘부자 감세’ 프레임을 누그러뜨리려 개인의 세 부담 변화를 계산하며 상속·증여세 개정 효과를 제외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됐다. 서민, 중산층의 세 부담 감소 폭이 더 크게 보이도록 꼼수를 썼다는 것이다.

내년부터 크게 달라지는 상속·증여세를 뜯어 보면 소득과 재산이 많은 이들에게 더 큰 감세 혜택이 돌아간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개정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하면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은 50%에서 40%로 낮아진다. 또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과세표준(상속액에서 각종 공제액을 제외한 금액)도 ‘30억 원 초과’에서 ‘10억 원 초과’로 조정된다. 상속세를 매길 때 자녀 한 명당 빼주는 금액은 5000만 원에서 5억 원으로 확대된다. 17억 원을 배우자와 자녀 2명에게 물려준다고 하면 아예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부자 감세 철회를 주장하고 있는 야당이 상속인들에게 돌아갈 감세 혜택을 제외하고 계산한 이유를 묻는다면 정부는 어떤 답을 내놓을까. 세법 개정안 발표 때 정부는 개인의 여건에 따라 중산층도 상속·증여세 부담이 줄어들 수 있어 일률적으로 고소득자로 넣긴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똑같이 답하려면 감세 혜택을 받는 중산층이 최소 절반에 육박한다는 분석이라도 가져와야 한다. 불필요한 논란만 키운 비합리적인 계산법의 근거를 더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2년 연속 역대급 세수 펑크가 이어지면서 윤석열 정부 재정 정책의 대원칙인 ‘건전 재정’과 감세는 함께 가기 어려워지고 있다. 세금이 덜 걷히는 상황에서 건전 재정을 지키려면 추가 감세는 그만하거나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납득하기 어려운 숫자를 앞세워 ‘중산층 감세’를 외치며 감세 기조를 뒷받침하고 있다. 지출은 줄이지도 못해 올해도 청약통장 저축액 등으로 조성된 기금에서까지 돈을 끌어다 쓰는 ‘돌려막기’에 나선다. 이런저런 꼼수들로 채워지는 건전 재정은 지속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경제 전반에 주름살만 안긴다.

#국회예산정책처#세법 개정안#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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