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 멤버 로제와 미국 팝스타 브루노 마스가 함께 부른 노래 ‘아파트’를 패러디한 ‘로케트’다. 가수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다. 선글라스를 낀 김정은은 원작 뮤직비디오처럼 드럼을 치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김여정은 춤을 춘다. 이 유튜브 영상은 300만 조회수를 넘기며 큰 화제를 모았다. 누리꾼들은 “아오지차트 1위감”이라며 호평했다. 물론 이 영상에 등장하는 김정은과 김여정은 진짜가 아니다. 유튜버 ‘화성인 릴도지’가 10월 말에 공개한 딥페이크 합성 영상이다.
딥페이크는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 기술을 통해 실제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사실적인 영상, 이미지, 목소리 등을 합성하는 최신 기술이다. 혁신적이지만 적용 자체가 어렵진 않다. 정면 얼굴 사진만 있으면 사진과 영상에 딥페이크를 적용할 수 있다. 사람들은 딥페이크 앱을 이용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기 얼굴과 영화 속 원더우먼, 해리 포터, 아이언맨 등을 합성해 올렸다. 딥페이크 하면 빠질 수 없는 축구 선수들이 있다. 영국 축구팀 토트넘에서 함께 활동했던 손흥민과 해리 케인이다. 이들의 얼굴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배우 이정재, 박해수의 얼굴에 덧입힌 딥페이크 영상이 화제가 됐다.
이렇게 시작은 모두가 즐거운 놀이였다. 특히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한 젠지(GenZ·Z세대) 사이에선 이 새로운 놀이가 빠르게 퍼져나갔다. 몇몇 전문가는 딥페이크 기술이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지만, 별다른 제재는 없었다. 그사이 음지에선 딥페이크 음란물이 생성되고 있었다. 젠지가 주로 이용하는 채팅 프로그램 텔레그램의 봇이 문제였다. 텔레그램에 원하는 인물의 사진과 함께 각종 조건을 넣으면 인공지능이 10초도 안 돼 나체 사진을 만들어냈다. 이를 이용한 ‘지인 능욕방’이 생겨났다. 이용자들은 주변의 여자 동기나 여교사 또는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들의 얼굴을 음란물에 합성하기 시작했다. 음성적으로 수년간 이용되던 이 능욕방들이 최근 무더기로 적발됐다.
‘혹시 내 사진도 딥페이크에 사용된 거 아냐?’ 여성들 사이에서 ‘딥페이크 포비아’가 퍼져 나갔다. 여성들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클로즈업된 얼굴 사진들을 비공개로 돌리는가 하면 카카오톡 프로필을 얼굴이 없는 사진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일부는 앞모습 대신 뒷모습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가짜’를 우려한 나머지 ‘진짜’가 통제받게 된 것이다.
이런 사건으로 인해 최근 언론에서는 딥페이크의 악용 사례를 더 부각하곤 한다. 사실 딥페이크라는 용어도 2017년 미국의 소셜네트워크 플랫폼 레딧에서 ‘Deepfakes’라는 닉네임의 사용자가 할리우드 유명 여배우의 얼굴과 음란물을 합성해 올리면서 생겨난 신조어였다.
그러나 주지해야 할 점은 딥페이크가 ‘나쁜’ 기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딥페이크는 특히 영화 같은 영상 업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기술이다. 2020년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영화 ‘아이리시맨’을 보자.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는 출연 당시 이미 80세에 가까운 나이였지만, 영화 속에서는 30대부터 70대까지의 다양한 연령대의 모습을 연기해 화제가 됐다. AI를 활용한 디에이징 기술 덕분이었다. 이 기술은 배우의 얼굴을 젊어 보이게 만들어, 나이를 초월한 연기를 가능케 했다. 다만 디에이징 기술을 적용하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사용됐다. 딥페이크 기술을 적용했다면 훨씬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교육 분야에서도 딥페이크 기술의 활용 가능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2019년 미국 플로리다의 달리 미술관에서는 딥페이크를 활용해 살바도르 달리를 스크린 속에 부활시켰다. 관람객들은 달리가 자기 작품과 삶에 대해 직접 설명하는 모습을 화면에서 보며 몰입할 수 있었다. 물리학 시간에 딥페이크로 생성된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직접 강의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학생들에게 훨씬 실감 나고 흥미로운 수업이 될 것이다.
딥페이크는 긍정적인 목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기술이다. 숙제는 정확한 규제와 윤리적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특히 젠지에게 딥페이크 성범죄가 ‘또래 집단에서 인정받기 위한 놀이’로 여겨지지 않도록 엄격한 교육이 필요하다. 최근 대학 동문 등 여성 사진을 음란물과 합성해 제작하고 유포한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의 주범이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형사재판에서 선고 형량은 검찰 구형보다 통상 낮아진다. 이번 판결은 검찰의 구형량이 그대로 받아들여진 드문 사례였다. 피해자의 인격을 파괴하는 신기술 범죄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법원의 의지가 느껴졌다. 영상은 ‘가짜’지만 피해는 ‘진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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