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5 대선에서 승리해 ‘트럼프 2기 시대’를 열게 됐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번 대선 결과를 좌우할 남부 경합주를 잡은 데 이어 최대 승부처 펜실베이니아에서 승리하면서 승부를 결정지었다. 트럼프는 승리 연설에서 “미국의 진정한 황금시대를 열겠다”며 “미국을 우선시하는 데서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공화당은 이번에 상·하원까지 다수당을 차지해 이른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2기는 지금의 민주당 행정부와는 전혀 다른 미국을 예고한다. 4년 전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을 글로벌 리더로 복귀시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제 다시 미국은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건 일방주의적 대외정책으로 회귀하게 된다. 트럼프는 취임 즉시 국경을 봉쇄하고 불법 이민자에 대한 대추방 작전을 수행한다고 공언해 왔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의 담 쌓기와 추방은 국제사회로부터의 재이탈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것이다.
트럼프 2기는 트럼프 1기와도 다를 것이다. 1기 때만 해도 트럼프 주변엔 이른바 ‘어른들의 축’으로 불리는 인사들이 트럼프의 좌충우돌 변덕을 억제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새로 구성될 내각과 참모진은 트럼프 충성파 일색이 될 것이어서 미국 우선주의 색채는 훨씬 강해질 게 분명하다. 여기에 공화당의 상·하원 의회 장악은 물론이고 트럼프 시절 임명된 연방 판사들로 사법부마저 보수 우위 시대여서 트럼프의 폭주를 제어하기는 더욱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트럼프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바이든 시절 벌어진 유럽과 중동 두 개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24시간 내’ 조기 종결을 장담했지만 우크라이나와 유럽 국가들의 반대에 쉽사리 휴전을 끌어낼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특히 트럼프 복귀를 계기로 과거 그와 잘 지내던 독재자들로선 호기를 맞았다는 판단 아래 기존 세계 질서를 교란하기 위한 모험주의적 행동에 들어갈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런 대표적 위험인물이 바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다. 김정은은 이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 대규모 병력을 보냈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같은 고강도 핵·미사일 도발로 트럼프 당선에 사실상 ‘다걸기(올인)’한 상태다. 김정은은 6년 전 자신을 국제 외교무대에 세워준 트럼프와 함께 북핵 직거래 외교 이벤트를 다시 꿈꾸고 있을 것이다.
나아가 동맹도 거래 관계로 보는 트럼프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1기 때보다 훨씬 강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을 대놓고 ‘머니 머신(현금인출기)’이라고 부른 트럼프다. 한미 정부가 이미 합의한 분담금 특별협정을 백지화하는 것을 넘어 주한미군 철수 또는 감축을 압박하며 그 몇 배의 청구서를 들이밀 수 있다.
우리 경제에도 치명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모든 수입품에 10∼20%,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선 6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한국 제품의 대미 수출, 나아가 중국에 대한 중간재 수출에 타격을 줄 수 있다. 게다가 트럼프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칩스법)을 비판하며 보조금 폐지를 거론해 왔는데, IRA 혜택 등을 기대하고 미국에 대거 진출한 우리 기업이 피해를 볼 수 있다.
트럼프 2기를 앞두고 한미 관계는 불가피하게 급격한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미국 새 행정부 측과의 긴밀한 정책 조율을 통해 대북 안보태세부터 유지해야 한다. 나아가 북한군 파병 등 북-러 밀착에 맞선 기존 대응 전략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대의 ‘트럼프 리스크’는 그 불가측성에 있다.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기민한 대처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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