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에게 바이든의 모든 유산은 청산 대상
한미일 협력-방위비 분담금 등 재고 나설 듯
한국, 트럼프식 거래 맞춰 실익 추구 외교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결국 백악관에 복귀하게 되었다. 아직 모든 개표 결과가 보고된 상황은 아니지만 트럼프는 경합주 대부분을 석권하여 예상보다 큰 차이로 승리를 거두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전국 단위 득표율에서도 트럼프가 해리스를 앞섰다는 점이다. 2016년과 2020년에 전국 단위 득표율에서 밀렸던 트럼프가 세 번째 도전에서 민주당 후보를 앞섰다는 사실은 미국 정치 지형에 큰 변화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1992년 대통령 선거 이후 2020년 선거까지 민주당은 일곱 번, 공화당은 단 한 번(2004년) 전국 득표율에서 앞섰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타주를 제외한 나머지 49개 주에서 2020년 대비 2024년에 주별 트럼프 득표율이 올라간 것을 보면 트럼프의 완승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트럼프 승리의 이유는 몇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우선 1980년 선거 이후 처음으로 인플레이션이 중요 현안이었던 선거였음을 곱씹어 봐야 한다.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연방정부의 재정정책이 물가 상승을 낳았다. 바이든 행정부 초반에 치솟던 물가는 2023년을 기점으로 낮아지기 시작했고, 올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기준금리를 낮춤으로써 물가가 충분히 잡혔음을 공식화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년 전 물가를 기억하는 일반 유권자들은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는 결국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심판론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이민 문제도 중요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의회가 새로운 이민 정책을 만들기를 기다리는 동안 불법 이민자의 수는 크게 증가하였다. 작년에는 한 달에 20만 명가량의 불법 이민자들이 국경을 넘어오기도 했기에 주정부가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로 대두된 바 있다. 한때 불법 이민자 비하 발언을 일삼았던 트럼프는 올해 이 문제를 철저하게 법과 질서의 프레임으로 접근하여 더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다. 이렇게 경제 문제와 이민 문제로 무장한 트럼프에 맞서기엔 임신 중절과 민주주의 위기라는 무기를 든 해리스가 상대적으로 약했던 것이다.
후보의 인종과 성별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공교롭게도 트럼프가 출마한 세 번의 선거 중에 민주당이 백인 남성 후보를 낸 때만 승리하고, 여성 후보를 낸 경우에는 패배하였다. 2016년 백인 여성 후보로는 전국 단위 득표를 더 하고도 패배했지만, 올해는 유색인종 여성 후보로 완패하였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사회문화 현안에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흑인과 히스패닉 남성들이 바이든에 비해 해리스를 덜 지지했다는 출구조사 결과가 의미심장하다. 민주당은 앞으로 젊은 백인 남성 정치인을 의도적으로 키워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벌써부터 들린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안겨준다. 바이든 대통령에 비해 동맹을 경시하고,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는 트럼프를 대하기에 난감한 지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가 있다. 얼마 전 양국 간 이루어진 합의를 트럼프가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미 선거운동 기간 중 한국이 최소 9배를 더 분담해야 한다는 발언을 한 바도 있다. 돈으로만 해결될 문제인지도 명확지 않고, 가뜩이나 세수 부족에 시달리는 현 상황에서 트럼프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북핵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트럼프의 공언대로 임기 중 김정은을 다시 만난다면, 김정은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 달라고 할 것이고, 트럼프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만 중단시키려 할 것이다. 이 교환은 각자 자국 국민에게 성과로 포장할 수 있는 내용이다. 다자 협상을 기피하고 양자 대화를 고집하는 트럼프의 성향상, 미북 대화에 우리와 일본이 낄 여지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곧 바이든 행정부 때 형성된 한미일 협력 및 확장 억지에도 타격이 된다. 트럼프는 민주당 세력과 자신의 배신자들로 구성된 ‘내부의 적’에게 복수의 칼을 갈고 있는 사람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모든 성과와 유산은 청산 대상이다. 우리와 연관된 것들도 예외가 아니다.
트럼프의 미국과 바이든의 미국은 서로 다른 나라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복귀하는 2025년 1월 20일부터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트럼프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들어줄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것은 트럼프가 능하다는 거래의 사전적 정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각자도생의 시기에 다자협력과 가치동맹이 들어설 공간은 없다. 철저하고 냉정한 계산을 통해 실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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