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부분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한다. 돈이 많거나 돈 버는 일에서 자유로워지면 원하는 일만 하거나 자기 계발, 취미 생활을 하며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복권에 당첨되거나 갑자기 어떤 행운이 찾아와 평생 돈을 벌지 않아도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한다.
도배를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힘을 합쳐 마련한 신혼부부의 새집을 도배하기도 하고, 누수가 생겨 곰팡이가 잔뜩 핀 낡은 집을 도배하기도 한다. 새롭게 개원하는 학원의 강의실이나 작은 원룸을 도배한 적도 있다. 아주 큰 돈을 들여 리모델링하는 부잣집에 들어가 도배를 할 때면 ‘나도 돈이 많아서 이런 좋은 집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하지만 비싼 집에 사는 소비자를 직접 만나 보면 돈이 많다고 반드시 돈으로부터 자유롭거나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나의 한정된 시야와 경험이긴 하지만, 여유롭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돈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돈에 대한 집착과 인색함이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도 있다. 큰 문제가 없어 대부분은 그냥 넘어가는 아주 작은 부분도 큰돈을 들였다는 이유만으로 지나치게 흠을 잡아 작업자들을 견딜 수 없게 만들고, 돈을 주고 사람을 썼으니 최대한 뽑아내야 손해가 아니라는 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돈이 많더라도 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무엇인지, 돈을 행복하게 쓰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지 생각해 보게 된다. 우선, 돈을 버는 이유가 명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생계유지를 위한 것인지, 그것을 넘어 취미 생활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주변 사람들과 나누며 살고자 하는 것인지, 비싼 물건을 사고 좋은 집에서 살고자 하는 것인지…. 그렇다면 또 얼마를 버는 것이 적당할지, 얼마를 벌면 만족하고 멈출 것인지도 생각해야 한다. 돈에 대한 목표나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면 아마 벌어도 벌어도 만족함이 없고 더 많이 벌기만을 바라게 될 것이다.
도배사들이 물건 가격을 따질 때 자주 하는 말이 “그 돈이면 내 하루 일당이야!” “내 일당보다 많네!” “와, 그거 사려면 사흘은 꼬박 일해야 해!”라는 말이다. 고생하며 돈 버는 것은 어떤 일을 하든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예전에 직장을 다닐 때는 내 월급으로 그 물건을 살 여력이 있는지만 생각했는데 현장에서 도배를 하며 일당을 받는 지금은 이것을 사기 위해 내가 며칠을 일해야 하는지, 그리고 힘들게 일한 돈을 여기에 쓰는 게 맞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을 하는 것은 맞지만, 무엇을 위해 돈을 벌고 있는지 잊지 않으려 한다. 돈 버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것 이상으로 번 돈을 내가 쓰고 싶은 곳에는 기쁜 마음으로 쓰고 불필요한 곳에는 아끼면서, 돈에 끌려가지 않고 돈을 자유롭게 이용하려 한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그것을 원하는 곳에 사용할 때조차 불안해하고 행복해하지 못한다면 돈을 많이 버는 의미가 줄어들 것이다. 돈을 적게 벌더라도 현재에 만족하고 안주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돈 그 자체에 끌려가기보다는 돈이 내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어떻게 돈을 쓸 때 행복한지 생각해 본다면 조금이나마 돈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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