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초대석]“메트는 세상 모두를 위한 미술관… 미중 정부 싸워도 문화는 교류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1월 10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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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홀라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관장 겸 CEO
“한국문화 힘차고 세련…현대관 강화”
대중 위한 미술관… 유럽과 달라
민족주의 반대편에서 다양성 지향… 세계 정세 어려울수록 문화 교류 중점
현대 미술에선 ‘주제’와 ‘방식’ 핵심… 미술관-예술 통해 커뮤니티 강화해야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메트)의 막스 홀라인 관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세계 상황이 어려울수록 문화 교류가 더 중요하다”며 “미술관이 예술과 커뮤니티를 위한 장소임을 믿었던, 깊은 열정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메트 제공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메트)의 막스 홀라인 관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세계 상황이 어려울수록 문화 교류가 더 중요하다”며 “미술관이 예술과 커뮤니티를 위한 장소임을 믿었던, 깊은 열정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메트 제공
《세계인들 대다수가 한 번쯤 여행을 꿈꾸는 미국 뉴욕. 그리고 뉴욕 여행 계획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메트)이다. 맨해튼 한복판 센트럴파크 동쪽 끝에 4개 블록에 걸쳐 거대한 신전처럼 서 있는 이 미술관은 1870년 창립 이래 154년간 세계 전역의 예술 작품을 전시해 왔다. 시대와 지역별로 구분된 전시관이 고대 이집트부터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5000년 이상의 시간을 담은 예술 작품 200만여 점을 펼쳐낸다. 메트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영국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때문에 “사실상 미국의 국립 미술관”(워싱턴포스트 미술평론단)이란 평을 듣지만, 메트는 엄연히 최고경영자(CEO)가 있는 비영리 사립미술관이다. 7일(현지 시간) 메트 본관에서 세계 최대의 사립미술관을 이끌고 있는 막스 홀라인 메트 관장 겸 CEO를 만났다. 본관 상층부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창밖을 내려다보니 가을빛에 싸인 센트럴파크와 양쪽으로 펼쳐진 메트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그는 독일식 억양이 담긴 영어로 “이곳에 서면 메트의 시작과 지난 100년 동안의 변화 과정이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메트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변화 중 하나는 정문 앞이다. 양옆 4곳에 9월 설치된 한국 작가 이불의 대형 조각작품들이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지난달까진 메트 한국관 개관 25주년 기념전시가 열렸고, 다음 달부터 한국관에서 ‘컬러풀 코리아’전(展)도 열린다. 1970년대 주한 미국대사였던 리처드 스나이더의 부인 리아 스나이더(2020년 작고)가 40년에 걸쳐 모아온 한국 민속 미술품을 선보이는 전시다.

―요즘 한국과 관련한 메트 소식이 많다. 세계적 미술관의 관장 겸 CEO로서 한국 미술을 어떻게 보나.

“2년 전 한국에 갔을 때 서울과 부산, 제주를 방문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역시 한국 현대 미술을 포함해 한국 문화의 패기로움과 세련미에 놀랐다. K팝은 물론이고 그림이나 텍스타일도 놀라웠다. 제주 서귀포시 본태박물관에서 전통부터 현대까지 한국의 직물 작품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볼 수 있었다.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강력하면서도 흥미로운 환경이었고, 다양한 미디어에서 매우 뛰어난 결과물이 나오는 걸 볼 수 있었다.

메트는 초창기부터 한국 미술과 함께했다. 우리의 초기 소장품(1889년) 중 하나가 한국 악기다. 그 후 수 세기에 걸쳐 한국의 작품들을 소장해 왔다. 한국관(1998년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삼성문화재단 후원으로 개관)을 통해 한국 미술을 더 넓은 맥락에서 소개할 수 있었다. 다양한 한국 현대 미술 작품도 수집 중인데, 새로 만드는 현대관(2029년 완공 목표)에서 더 흥미롭고 매혹적인 전시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발언에서 ‘다양성’을 강조한 게 인상적이었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의 여러 미술관에서 경력을 쌓았는데 메트는 다른 곳과 무엇이 다른가.

“메트는 시작부터 루브르나 영국박물관 같은 유럽 박물관과 달랐다. 유럽 박물관들은 대중에서 출발한 게 아니다. 특정 귀족이나 통치자에 의해 컬렉션이 만들어졌고, 그 후 어떤 시점에 이르러서야 대중에게 공개됐다. 메트는 다르다. 설립 때부터 순전히 교육적이면서도 대중을 위한 미술관이란 사명을 갖고 세워졌다. ‘뉴욕과 뉴요커에게는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설립된 미술관이다. 이런 차이가 DNA부터 본질적으로 다른 미술관을 만들었다. 메트는 ‘우리’의 미술관이다. 그래서 사립이지만 국립보다 더 공공적인 미술관이 될 수 있었다.

메트는 미국 국립 미술관이 아니고 세상의 미술관이다. 우린 세계에서 온 관람객들이 미술을 통해 깊은 유대감을 느끼는 동시에, 그들의 문화와 가치와 생각을 대변하는 곳이라고 느끼길 원한다. 그런 면에서 국립 박물관이 아닌 건 장점이다. 국립 박물관은 국가의 문화적 발전을 보여줘야 하지만 여긴 자유롭다. 문화의 융합과 인류의 공동 문화유산을 보여주는 공공적이고 보편적인 기관이라는 게 정말 좋다. 세계 곳곳에서 민족주의(nationalism)가 강화되고 있지만 우린 그 반대편에 있다. 우린 다양성을 지향한다.”

―하지만 펀딩은 숙제일 것 같다.

“복잡한 일이다. 하지만 도전이자 기회이기도 하다. 예컨대 모든 자금이 정부나 공공자금에서 나오면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적 기금이 핵심이고 그만큼 다양한 개인들의 관심사를 다뤄야 한다. 예를 들어 청자를 수집하는 부유한 기부자는 우리가 더 많은 청자를 수집해 전시하길 바랄 것이다. 이런 여러 개인의 관심사와 지원을 잘 조합하면 보다 전체적이고 아름다우면서도 균형 잡힌 강력한 기관을 만들 수 있다. 펀딩 확보 자체도 중요하지만, 지원이 다양한 관점과 열정을 가진 이들로부터 오는 게 더 중요하다. 그래야 (대중적인) 프랑스 장식예술에 관한 전시를 하면서도 동시에 (마이너적인) 티베트 불교미술에 대한 전시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린 그렇게 한다. 이런 게 중요하다고 여기도록 기부자들을 설득하고, 해당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요즘 세계엔 너무나 많은 전쟁과 죽음이 보인다. 이런 시대에 예술은 어떤 의미가 있나. 당신은 ‘예술의 사회적 맥락’이 중요하다고 말해 왔다.

“미술관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다른 사람과 만나 대립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의미 있는 담론과 논쟁을 펼칠 기회를 제공한다. 세상에 대한 다양한 의견, 문화에 대한 다양한 생각이 담기는 그릇이 예술이다. 때론 작품의 주제나 메시지가 내 생각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생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역사는 반복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한다. 이념을 둘러싼 갈등을 어떻게 바라보고 극복할지에 대해서도 도움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관은 ‘다리가 끊어지고 있을 때도 연결될 수 있는 마지막 장소’다. 국가 간 대화가 단절되거나 위태로울 때도 문화적 대화는 계속된다. 지금 미국과 중국은 무역과 경제에 대한 긴장이 크지만 우린 여전히 상하이와 전시를 기획하고 깊은 관계를 유지한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문화적 대화와 교류가 굉장히 중요하고, 그런 면에서 메트가 더욱 중요하다.”

―인공지능(AI)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AI도 작품을 만드는 시대에 예술이란 무엇인가.

“AI는 모든 걸 변화시킬 것이고 예술도 예외가 아니다. 예술가들은 도구적 차원에서 의미 있는 방식으로 AI를 활용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전혀 다른 차원의, 마치 뒤샹이 자전거 바퀴를 받침대에 올려놓고 “이건 예술이다”라고 선언했던 것과 같은 일도 생겨날 것이다. 전적으로 AI가 만든 작품이더라도 작가가 어떤 시선으로 어떤 맥락(context) 속에 그걸 배치했느냐에 따라 관객의 보는 눈이 달라지는 작품 말이다. 그렇게 보면 AI로 만든 것이냐 아니냐는 작품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데 별 관계가 없다.”

―현대 미술에 조예가 깊은 걸로 알고 있다. ‘벽에 붙인 바나나’(이탈리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코미디언’)를 예술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현대 미술은…. 이건 큰 담론인데(웃음), 일단 제1원칙은 예술의 판단 기준이 장인 정신이나 아름다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아이디어, 제스처, 그리고 콘셉트이다. 예컨대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은 충격적일 수 있다.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우리 마음에 깊은 혼란과 큰 감정적 반응을 일으킨다. 오스트리아 감독 미하엘 하네케가 만든 영화 ‘하얀 리본’도 정신적으로 불편하고 강렬한 경험을 준다. 그런 면에서 예술은 장인 정신과 아름다움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무엇을 성취하려 했고, 그걸 어떻게 펼쳐냈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현대 미술의 스펙트럼이 훨씬 더 넓고, 정서적 반응도 훨씬 더 크다. 완전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작품도 있지만 깊고 깊은 교란을 일으키는 작품도 있을 수 있다. 모두 현대 미술에서 예술가의 생각을 표현하는 유효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포스트 모더니즘 건축의 선구자 한스 홀라인)가 세계적인 건축가였다. 예술 철학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받았나.

“어렸을 땐 특별한 환경인 줄 몰랐다. 다만 아버지와 친한 예술가들이 우리 집에서 저녁을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과 친구들은 자신들의 아이디어와 비전을 놓고 밤새 대화를 했다. 어느 순간부터 모두가 서로 소리 지르며 싸우는 것처럼 보였고, 잠결에 들으면 정말 시끄러웠다. 그런데 재밌는 건 다음 날 만나면 다시 반가운 친구였다는 것이다. 지금은 보기 힘든, 고함이 오가는 강렬한 지적 담론이었다. 아버지는 1960, 70년대에 건축가로서 자신의 건축적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제도권에 맞서 싸워야 했다. 화가는 자신의 비전을 그리면 되지만 건축가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해 많은 이를 설득해야 한다. 실현하기까지 장애물도 수없이 극복해야 한다. 강한 캐릭터를 가진 투사여야 했다. 난 어느 순간 미술에 관심이 생겼고, 또래보다 많은 걸 알았지만 건축가나 예술가가 되고 싶진 않았다. 아버지가 유명했지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았고, 경제적으로도 그랬다. 그래서 난 미술사와 경영을 공부했다.”

―메트의 154년은 10명의 관장들이 끌어 왔다. 이들은 보통 각각 한 문장으로 정의된다. 10번째 관장인 당신은 어떤 문장으로 기억되고 싶나.

“미술관이 예술과 커뮤니티를 위한 장소임을 믿었던, 깊은 열정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막스 홀라인 메트 관장은…
196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한스 홀라인은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받은 포스트 모더니즘 건축의 선구자다. 빈 대학에서 미술사와 경영학을 전공했고,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관리자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른 쿤스트할레 미술관, 슈테델 미술관, 리비히하우스 조각 미술관 관장으로 일했다. 201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술관장에 취임했다. 2018년 제10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장에 임명됐으며 2022년 CEO를 겸임하게 됐다.


#막스 홀라인#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관장#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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