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10%가 보험금 63% 독식… ‘필수의료’ 좀먹는 실손보험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1월 10일 23시 24분


올 들어 실손보험 가입자의 10%가 전체 비급여 보험금의 63%를 타간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 보험사들이 1∼9월 지급한 비급여 실손보험금 4조3000억 원을 분석했더니, 보험금을 많이 타간 상위 10%의 가입자가 2조7000억 원을 싹쓸이한 것이다. 이들이 받아간 보험금은 1인당 평균 395만 원으로, 하위 10% 가입자가 타간 보험금의 260배를 웃돌았다. 4000만 명이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보험이 과잉 진료로 멍들고 있다.

이는 병원을 옮겨 다니며 과도하게 치료받는 ‘의료 쇼핑족’과 비급여 진료의 허점을 노린 의료계의 도덕적 해이가 맞물린 결과다. 한 40대 남성은 11개월간 병원 8곳에서 비급여 물리치료를 342회나 받고 실손보험금 8500만 원을 청구했다고 한다. 게다가 비급여 진료비 책정은 의료기관 마음대로이다 보니 일부 병원이 수입을 올리려고 고가의 비급여 진료를 남발하고 있다. 꼭 필요하지도 않은데 1000만 원이 넘는 백내장 수술을 권하거나 수십만 원 하는 도수치료에 비타민·영양주사 같은 시술을 병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과잉 비급여 진료로 인해 만성 적자에 빠진 실손보험은 올해도 2조 원이 넘는 손실을 낼 것으로 보인다. 적자를 메우려면 매년 보험료를 15%씩 올려야 할 정도다. 수천만 원씩 보험금을 타가는 소수의 부도덕한 환자들 때문에 병원에 잘 가지 않는 대다수 가입자의 보험료가 오르는 비정상이 계속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실손 빼먹기’가 건보 재정을 갉아먹고 의료 체계를 왜곡시킨다는 점이다. 급여 항목에 실손보험이 보장하는 비급여를 ‘끼워 파는’ 혼합 진료가 늘면서 건보 재정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실손보험 탓에 피부과·안과·정형외과 등에서 고가의 경증 치료로 손쉽게 돈벌 수 있는 구조가 굳어지면서 필수의료 분야의 구인난은 심각하다. 과잉 진료를 부추기고 필수의료를 무너뜨리는 실손보험에 대한 개혁을 늦춰선 안 되는 이유다. 불필요한 비급여 항목을 대폭 손질하고 환자 본인 부담을 높여 도덕적 해이를 차단할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보험금#독식#필수의료#실손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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